[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이기환 소방방재청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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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소방관 직업만족도, 성직자 이어 2위… 우린 반만이라도 인정받았으면

화재 진압을 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돼 순직한 인천 부평소방서 김영수 소방경 사고를 계기로 8일 만난 이기환 소방방재청장이 한국 소방대원들의 근무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3대가 소방관 집안인 이 청장은 “예산 인력 장비 면에서 한국의 재난대비는 후진국 수준이다. 재난형태가 복합화 대형화하는 시점에서 재난을 총괄 통제하는 전담기구 설치가 시급하다”고 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화재 진압을 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돼 순직한 인천 부평소방서 김영수 소방경 사고를 계기로 8일 만난 이기환 소방방재청장이 한국 소방대원들의 근무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3대가 소방관 집안인 이 청장은 “예산 인력 장비 면에서 한국의 재난대비는 후진국 수준이다. 재난형태가 복합화 대형화하는 시점에서 재난을 총괄 통제하는 전담기구 설치가 시급하다”고 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3일 또 한 사람의 소방관이 숨졌다. 인천 부평소방서 김영수 소방경(54). 불이 난 건물 안에서 실종됐다가 이튿날 새벽 발견됐다. 유독가스를 마셔 의식과 맥박이 멈춘 상태였다. 모친을 간병하다 결혼도 미루던 그는 모친이 돌아가신 후인 지난해 10월에야 결혼한 신혼이었다.

그가 죽은 지 불과 9일. 벌써 잊혀지고 있는 느낌이다. 소방관 순직이 알려질 때마다 요란했다가 금세 사그라지던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반복된다. 이기환 소방방재청장(57)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5층 집무실로 들어서 이 청장과 악수하는 순간, 기자는 그에게서 매캐한 냄새를 느꼈다. 이 청장은 “그럴 리가 없다”며 껄껄 웃었지만 30년 넘게 화재 현장을 지킨 사람의 몸에 화마(火魔)의 냄새가 배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들어 벌써 6명이 숨졌다.

“연평균 6.9명이 죽는다. 아무리 줄이려 해도 안 된다. 작년엔 8명이 순직했다. 경찰관, 군인 순직자가 매년 1, 2명인 것에 비하면 너무 많다. 부상자는 매년 340명 정도나 된다.”

그에게서 듣는 소방관들의 처우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2008년에야 3교대 근무가 시작됐지만(그전에는 24시간 맞교대) 아직도 완전한 3교대를 못하고 있다. 2만4000여 명이 더 필요하다. 소방대 한 팀에 기본적으로 10명, 한 곳에 30명이 필요하다. 현재 평균 21명이 3교대를 하고 있다. 그나마 광역시나 그렇고 도(道) 단위는 15명이 한다. 일이 터지면 17∼20km나 떨어진 다른 지역 대원들을 부를 수밖에 없다. 소방대원 한 명이 담당하는 국민은 1208명이다. 미국(1075명) 프랑스(1029명) 일본(820명) 홍콩(816명)보다 많다. 주당 근무시간도 미국 48시간, 일본 42시간, 우리는 56시간이다. 평균 수명은 58.8세다. 국내 다른 제복 직종보다 3∼4년은 짧다.”

장갑과 함께 탄 대원의 손 보고 펑펑 울어

그의 말이 잠시 멈췄다가 한숨과 함께 이어졌다.

“작년 강원 영월에서 소방관이 순직했는데 그때도 겨우 3명이 출동했다. 물에 떠내려간 아이를 구하겠다고 아버지가 뛰어들려는 것을 말리다 대원이 구하겠다고 들어갔는데 물살이 너무 세 몸에 맨 로프가 끊어져 죽었다. 안전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2월 부산의 한 병원에 들렀다가 그가 펑펑 울었다는 뉴스가 기억나 물었다.

“양손 피부가 벗겨져 괴로워하는 소방관 때문이었다. 안전장갑이 없어 일반 장갑을 끼고 출동했다가 장갑이 타 녹는 바람에 중화상을 입었다. 소방관 근무복이 폴리 계열이라 불이 붙으면 완전히 재가 된다. 국비 402억 원이면 낡은 장비를 교체할 수 있는데…. 우리는 소방업무가 모두 지자체로 이관돼 총 소방예산에서 국고 지원 비중이 1.8%(약 400억 원)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평균 얼만지 아나? 67%다. 고품질 방수 방화복 구비율은 미국의 50% 수준밖에 안 된다. 화재 진압에 필수적인 공기호흡기도 2001년에야 보급됐다. 그래도 1600여 개가 부족하다. 마스크만 쓰고 투입됐던 시절이 10여 년 전이고 호흡기도 한 대를 두 명이 나눠 썼던 시절에 비하면 크게 발전했지만 아직도 장비 부족으로 진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장에 투입된 대원들의 동선이 파악되지 않아 개인 판단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번에 순직한 김 대원도 마지막 교신 때 ‘지하 3층’이라고 답했다는데, 그 건물에는 지하 3층이 없었다. 공포심 때문에 순간적인 착오를 일으킨 것 같다.”

―지난해 9월 미국 CNN머니는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도 연소득 10만 달러(약 1억 원)가 넘는 직업군으로 소방대장, 항공관제사, 원자로관리사 등을 꼽았다. 미 소방대장 평균 연봉은 7만3000달러(약 7900만 원)이다. 이 중에는 12만1000달러(약 1억3000만 원)를 받는 소방대장도 있었다. 우리는 어떤가.

“대부분 대졸 이상으로 현장 경험도 적지 않지만 급여는 미국과 비교할 수가 없다.”

이 청장에게서 받은 소방공무원 봉급표를 보니 9급 소방사 월급이 129만9900원, 미국 소방대장격인 소방정, 소방준감은 230만∼260만 원이었다. 월급 외 현장 근무자들에게 지급되는 생명수당은 출동횟수와 관계없이 월 13만 원(위험수당 5만 원+화재진압수당 8만 원).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투입될 때 지급되는 수당이 연간 156만 원이었다.

―지난해 6월 소방방재청이 3만여 대원의 정신건강을 조사했더니 1452명이 정밀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에선 소방서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심리치료사를 둔다는데….

“끔찍한 화재현장을 겪은 대원 대부분이 ‘살려 달라’는 환청에 시달리고 죽어가는 사망자의 모습이 꿈에 나타난다며 괴로워한다. 자살하는 대원도 있다. 그동안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병력(病歷)이 남는 점 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못했는데 작년에야 처음 정신치료비용으로 3억5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총 5억8000만 원 정도는 필요하다.”

이 청장 자신도 우울증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오전 1시에 세탁소에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뛰어들자마자 발밑에 뭉클한 것을 밟았다고 느낀 순간, 사람이 마네킹처럼 벌떡 일어나는 것 아닌가.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지금도 생생하다.”

―처우가 그렇게 안 좋은데 소방관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웃으며) 처음부터 소방관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러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어쩌다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6개월만 지나면 사명감이 생긴다. 사람을 살렸다는 보람이 쌓이면서 ‘숙명’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는 “미국 소방관들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9·11테러’가 났을 때 무너지는 빌딩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는 소방관들에게 사람들이 ‘왜 올라가느냐’고 묻자 ‘내가 아니면 누가 (사람을) 살리겠나. 이것은 나의 숙명’이라고 했다.”

그가 갑자기 책상서랍을 열었다. 철로 만든 둥근 메달이 나왔다. 9·11테러 때 순직한 343명의 소방관을 기리는 추모 메달이었다. 앞에는 ‘343’이란 숫자가, 뒤에는 ‘소방관의 기도’가 씌어 있었다. ‘신의 뜻에 따라 제가 목숨을 잃으면 신의 은총으로 아내와 가족을 돌봐주소서.’

복합재난시대에 맞춰 전담기구 만들어야

실제로 미국 소방관들은 영웅대접을 받는다. 2006년 미국 시카고대 사회총조사에 따르면 소방관 직업만족도(80%)는 성직자(87%)에 이어 2위였다. 삶의 행복지수도 성직자에 이어 2위였다. 우리는 어떨까. 이 청장이 2012년 한국고용정보원이 조사한 직업만족도 자료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747개 직종 중 248위다.”

그는 “돈도 돈이지만 소방관들에 대한 대접이 차가울 때가 많아 서운하다”고 했다.

“일은 많고 사람은 적다 보니 건축물소방검사를 기본 업무에서 빼고 ‘소방특별조사체제’법령에 따라 특별한 경우에만 소방검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5월 5일 9명이 숨진 부산 시크 노래방 화재 사건 때 화재 책임이 평소 소방검사를 안 한 소방청에 있다며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이미 책임소재가 없어졌는데도 화재만 났다 하면 소방청에 떠넘기는 상황이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소방서 하면 불 끄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옛날 얘기다. 119를 이용하는 시민이 연간 2100만 명이다. 화재 진압은 기본이고 이번에 구미 불산 사고 같은 유독물질 사고, 구제역 같은 전염병, 선원 구조, 산악 구조는 물론이고 하수구에 빠진 사람까지 구조한다. 테러가 나도 119로 신고가 들어온다. 과격시위가 벌어질 때에는 구급차에 소방관들이 대기한다. 얼마 전에는 보건복지부 업무였던 응급의료서비스 ‘1339 서비스’까지 넘겨받았다.”

이 청장은 “요즘은 한마디로 복합재난 시대인데 전담기구가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예전엔 불이면 불, 물이면 물 하는 식으로 단순했는데 이제는 대형화 복합화됐다. 그런데 재난전담구조가 없다. 구미 불산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불산이 새고 있다고 119에 처음 신고가 들어왔는데 불산이 뭔지,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방대원들이 투입됐다. 가스가 계속 누출되니까 방호복을 입고 물을 뿌리며 가라 앉혔는데 확산이 되어버렸다. 사실 소방대원 역할은 ‘현장 진압’에 국한한다. 초동 진압부터 전문가들이 투입되고 재난이 일어난 후에는 사후 관리나 이재민 관리 등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어야 하는데 지방자치단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미국은 모든 재난에 중앙통제기능을 하는 연방국토청이 있고 그 밑에 분야별 집행기구가 있다. 경제규모 10위라고 하지만 재난 대비 수준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소방직 출신의 초대 청장이기도 한 이 청장은 3대가 소방관이다. 부친은 1986년 1월 19일 대구 화재현장에서 유독가스를 마시고 한 달 뒤 순직했다. 부친의 이름은 천안 중앙소방학교 소방충혼탑 306인 위패에 새겨져 있다.

아버지 보고 소방관은 절대 안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늘 새벽에 출근했다. 퇴근할 때는 늘 숯 검댕이 되어 돌아왔다. 무전기를 끼고 살며 시도 때도 없이 비상소집에 불려나가고 휴가도 없이 일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절대 제복은 안 입겠다’고 생각했는데…어쩌다 보니 나도 대를 잇고 있다(그는 1977년 경북 소방관 공채 1기 시험에 합격했다). 아들도 2010년 공채시험을 거쳐 소방관이 돼 강원 원주소방서에서 일하고 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는 그는 대구 북부소방서장 시절 하수구에 실종된 여학생을 수색하다 세 명의 부하가 죽은 일을 가장 가슴 아픈 일로 꼽았다.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119를 너도나도 쉽게 불러버리면 정작 긴급한 곳에는 못 간다. 작년에는 소방대원이 고양이를 구하다 추락사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너무 쉽게, 예를 들어 문 잠김 해제 같은 작은 일에도 119를 부른다. 미국에서는 소방관이 순직하면 지역 주민들이 탑을 만들어 기린다. 미국만큼은 아니라도 소방관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청사를 나오면서 기자는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야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무상복지 공약을 지키려면 100조 원 이상이 들어간다. 정치란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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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이기환#소방방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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