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더운 여름이 언제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폭염이 지속되면서 전력 대란에 대한 우려도 컸다. 단순히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는 것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에 역부족이다. 이제는 장기적이면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확고한 대안을 찾고 이를 실행해야 할 시점이 왔다.
한국은 알다시피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에너지 빈국이다. 에너지가 곧 국제사회의 권력이며 국가경제의 발판인 시대에 이런 환경은 대한민국의 태생적인 약점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제 성장 신화를 만들어 가는 동안 전력산업 역시 꾸준히 성장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전기는 풍족한 자원이 됐다. 우리나라가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빈국이라는 현실은 여전하지만 기술이나 공급 수준에서 강력한 전력강국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생기는 법.
바로 이 같은 성과가 오히려 우리 사회가 전기에 대해 ‘왜곡’을 갖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전기는 ‘항상 풍족한 자원’이라는 환상, 그것이 첫째 왜곡된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1년 수입의 30%를 에너지를 구입하는 데 쓴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자동차 1년 수출액의 1.5배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이 에너지 수입으로 지출되지만 그렇게 만든 ‘양질의 국산 전기’는 에너지 빈국이라고는 이해되기 힘들 정도로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측면이 많다.
둘째는 바로 전기가 ‘경제적인 에너지’라는 왜곡된 인식이다. 우리나라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보다 1인당 전력소비량이 많다. 이 국가들에서는 에어컨 실외기도 그다지 많지 않고 곳곳에서 야박할 정도로 전등이 켜졌다 꺼졌다 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지난해 여름의 막바지인 9월에 순환 정전의 충격을 겪었지만 여전히 여름, 겨울을 구분하지 않고 전력피크의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 다음으로 높은 전기 사용 증가율을 기록한 것도 OECD 국가 중 가장 싼 전기요금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경쟁그룹인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보다 싼 전기요금 체계를 자랑할 수 없는 것도 왜곡된 에너지 현실을 반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만들 때 화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4%인데도, 수입한 에너지로 만든 전기가 싸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같은 측면에서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정보통신 강국 대한민국의 정보통신기술과 전력망이 결합된 ‘스마트그리드’다. 똑똑한 전력망인 스마트그리드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전력사용 패턴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전기 사용량이 많아질 때는 자동으로 전기 소비를 조절하고 쓰지 않는 전기는 필요로 하는 곳에 보내준다. 스마트그리드는 선진적인 에너지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에너지 분야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기술 솔루션으로 주목하며 많은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분야인 것이다.
이와 함께 스마트그리드는 풍력,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결합한 미래형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다. 이제 예전처럼 정부의 지침이나 절약 캠페인만으로는 임시방편을 벗어나기 어렵다. 상시적이고 자발적으로 소비효율과 소비절약을 유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에너지 수급 시스템을 갖추는 것, 바로 스마트그리드야말로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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