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노총, 통진당 들러리였다면 이제라도 변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6일 03시 00분


조준호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최근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은 (통진당에) 돈과 표를 대는 들러리였다”고 고백했다. 민노총이 중심이 돼 만들어진 통진당에서 정파집단이 주인 노릇을 하면서 노동자 농민 서민을 들러리로 만들었다는 뼈아픈 자성이다. 민노총 출신인 조 전 대표는 “나를 통진당의 공동대표로 추대한 것도 2%대로 추락한 당의 지지율 속에서 민노총의 조직력이 필요해 SOS를 친 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때 자신이 이끌었던 통진당에 대해 “진보당이 아니라 퇴보당을 하고 있다” “진보정치를 말할 자격이 있나”라며 비판했다.

통진당 사태는 종북(從北) 좌파세력에 휘둘리는 한국 진보정치의 수준과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 전 대표는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우리 내부를 성찰해야 하는데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당내의 비(非)민주성도 고발했다. 구(舊)당권파는 통진당을 장악하고 정파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비례대표 경선 부정도 서슴지 않았다. 당 쇄신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는 대화와 타협의 장이 아닌 폭력의 아수라장이었다. 당의 공식기구가 문제를 제기하고 결정한 이석기 김재연 의원 제명도 무산시켰다.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패거리 진보정치에 대한 환멸이 무더기 탈당으로 이어진 것은 예견된 수순이다.

민노총은 산하에 전교조 전국공무원노조 금속노조 등을 거느린 통진당의 물질적 정신적 기반이다. 진성(眞性)당원제를 채택한 통진당의 주 수입원은 당비(黨費)인데,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의 40% 이상이 민노총 조합원이다.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도 민노총 주도로 만들어졌다. 민노총은 통진당 구당권파를 비난하기 전에 시대착오적인 이념을 신봉하는 세력에 표와 돈을 대는 젖줄로 전락한 근본 원인에 대해 자기성찰을 먼저 해야 한다.

민노총은 올해 5월 초 북한의 핵 개발과 3대 세습을 사실상 정당화하는 내용의 통일교과서를 발간했다. 조합원 대상 학습 자료라는 이 교과서는 김정은에 대해 “(김정일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훌륭한 지도자를 후계자로 내세운 것”이라는 궤변을 수록했다. 조 전 대표가 비판한 구당권파의 종북 논리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노조 역시 국가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국리민복의 공동체적 가치 위에서 활동해야만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민중과 진보의 이름을 팔아 ‘퇴보 정치세력’에 돈과 표를 대는 것이야말로 민노총의 ‘배임(背任)정치’다.
#조준호#통합진보당#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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