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경제 민주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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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이 ‘동아쟁론(爭論)’을 신설합니다. ‘주장은 명확하게 판단은 독자에게’라는 취지로 그때그때 우리 사회를 달구는 뜨거운 이슈들을 잡아서 전문가들로부터 찬반양론을 듣는 여론의 광장입니다. 어느 한쪽의 주장을 담기보다 찬성과 반대라는 양쪽의 입장을 모두 소개해 독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논쟁적인 도전의 장을 기대해주십시오. 첫 번째 주제는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로 등장한 ‘경제 민주화’입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재벌 개혁을 내세우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정치적 구호라고 반박합니다. 》
▼ ‘힘의 집중’이 재벌문제의 근원 ▼

최정표 경실련 공동대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최정표 경실련 공동대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 민주화’란 공정한 경제활동과 공평한 성과배분을 의미한다. 이러한 ‘민주화’는 힘의 분산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어느 사회이건 힘이 집중되면 그 힘은 남용되고 사회정의는 훼손된다. 정치적 힘이 집중되면 독재를 낳고 시장의 힘이 집중되면 독점을 낳는다. 그러므로 힘의 집중은 민주사회가 가장 경계하는 악마(惡魔)이다. 민주주의 발전사는 힘의 분산을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힘의 분산은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도 정치 민주화와 마찬가지로 힘의 분산을 필수 요건으로 한다. 그런데 한국경제에서는 힘의 집중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5대 재벌의 기업자산은 우리나라 전체기업자산의 25%에 이르면서 국가소유 자산의 절반 가까이 된다고 한다. 5대 재벌의 힘은 다시 다섯 사람의 총수에게로 집중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경제의 절대적 힘이 다섯 사람의 개인과 그 가족에게 집중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집중된 경제적 힘은 언론, 문화, 스포츠, 광고, 행정, 입법, 사법 등 사회 곳곳에서 그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재벌의 힘은 이미 경제영역을 벗어나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그 힘이 남용되고 있다. 그리고 비경제분야에서의 영향력은 다시 경제영역에서의 힘을 추가시키는 데 활용되고 있다. 말하자면 경제영역과 비경제영역 사이에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이러한 비정상적 상황을 치유하지 않고는 시장경제도 성공시킬 수 없고 선진국을 달성할 수도 없다. 이런 현상은 후진국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고 선진국에는 없는 현상이라는 데서 그 답은 분명하다. ‘경제 민주화’는 바로 이 문제를 치유하여 시장경제를 복원하고 정상화하는 일이다.

힘의 집중은 또한 시장경제의 최대 적이다. 주식시장에 큰손이 작용하면 그것은 더이상 시장이 아니듯이 경제활동에도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큰 힘이 존재하면 시장은 파괴된다. 재벌은 이러한 집중된 힘의 주체이다. 재벌은 작심만 하면 어느 업종에나 진출하여 쉽게 그 업종을 장악해 버릴 수 있다. 시장경제의 번영을 위해서는 소수 재벌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이런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치 민주화가 정치권력의 분산에서 시작하듯이 경제 민주화도 경제력의 분산에서 출발해야 한다.

경제력의 분산은 재벌정책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재벌정책이 바로 경제 민주화의 첫걸음이 된다. 현재는 1%의 개인 소유지분으로 50%가 넘는 계열사 지분을 장악할 수 있는 제도를 허용하기 때문에 총수 한 사람이 수많은 기업을 지배할 수 있고 소수 개인에게 막강한 경제력이 집중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적은 돈으로 수많은 기업을 지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한국의 기업제도 때문에 재벌체제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소유 지배제도를 개선해야 재벌에 의한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해소할 수 있다.

재벌에서는 총수 돈이 아닌 계열사 자금으로 또 다른 회사를 소유하고 총수가 그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한다.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시행하고 금융계열사와 일반계열사를 분리시키면 이런 과정을 통해 총수가 지배할 수 있는 기업은 많이 줄어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는 결코 재벌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란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불법이 아닌 한 끝없이 이윤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이것은 나무랄 일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나오는 사회적 폐해를 최소화하면서 경제활동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고르게 분배되도록 올바른 제도와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입법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그동안 정부와 국회가 재벌과 영합하거나 재벌에 굴복하여 이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재벌 중심의 비민주적 비시장적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새 국회와 다가올 새 정권은 소수 재벌에 집중되어 있는 경제적 힘을 분산시킬 뿐만 아니라 그 힘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 길만이 한국경제의 살길이고 우리경제의 희망이다. 힘의 집중을 해소하는 데는 많은 난관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미룰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최정표 경실련 공동대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필자 소개 ::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산업조직학회장과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냈다.
▼ ‘경제 민주화’는 허울뿐인 구호 ▼

복거일 경제평론가 소설가
복거일 경제평론가 소설가
‘경제 민주화’는 새로운 용어가 아니다. 19세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미 ‘부의 평등화’라는 뜻으로 널리 썼던 말이다. 이때 경제 민주화는 ‘경제 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의 실현을 뜻한다. 따라서 경제 민주주의의 어원은 바로 공산주의 경제 체제인 것이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논파되자, 경제 민주주의도 체계적 이론으로 존재하기를 멈췄다.

최근 다시 살아난 경제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사소한 정책들을 포장하는 말이 되었다. 그런 주장들은 단편적이고 연관성이 적어서 원래 경제 민주주의 개념의 파편에 지나지 않지만 이론적 바탕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의 ‘노동량 가치설(quantity-theory of value)’이다. 이 이론은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원시적 이론으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도 오래전에 버렸다. 그리고 시장경제는 모든 시민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므로, 이미 그 자체로 민주적이다. 그래서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 민주주의라는 말을 아예 쓰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갑자기 경제 민주화가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를 까닭이 없다. 그것이 매력적인 구호라는 점을 빼놓고는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 체제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시장간섭 정책을 경제 민주화라는 구호로 포장한다.

그들은 헌법의 119조 2항 중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아주 애매해서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헌법에 들어가면 안 되는 표현이었다. 게다가 문맥으로 보면, 그것이 당해 조항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알다시피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향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에 바탕을 둔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데 이질적인 개념이 첨가되면서, 우리 헌법의 일체성이 상당히 훼손되었다. 이에 따른 현실적 해악도 크다. 역사적으로 법은 권력을 쥔 사람들의 자의적 행태를 억제해서 시민들을 보호해 왔다. 권력이 남용될 수 있는 규정들을 품으면, 좋은 법이 될 수 없다. 헌법 119조 2항은 국가가 시장에 자의적으로 간섭할 근거를 마련하면서도 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빠뜨려 우리 정부는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깊이 시장에 간섭해 왔다.

하지만 어떻든 그 조항이 실재하므로, 우리는 그것을 헌법정신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활동으로 나온 경제 상태에 부정적 측면이 보이면, 국가는 그것을 완화하려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 조항이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에 바탕을 둔 경제 민주주의를 내세웠다는 해석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지금 경제 민주화로 포장된 정책들의 핵심은 ‘강력한 재벌 규제’다. 재벌 규제는 인기가 높지만, 그것은 폐기된 경제 이론의 틀로 경제 현상을 살핀 데서 나왔다.

만일 재벌 기업이 재벌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묘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악한 존재라면 소비자들이 재벌 기업의 제품을 찾고, 젊은이들이 재벌 기업에서 일하려 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또 재벌 기업이 수출을 주도해 경제를 이끌고 있는데 강제로 퇴출시키면, 그 자리를 외국 대기업이 차지하는 현상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우리 시장은 이미 너무 많은 규제로 왜곡되었다. 거기서 활동하는 기업도 당연히 왜곡된다. 재벌 기업이 보이는 추한 모습은 대부분 잘못된 규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비현실적 규제를 푸는 것이지 경제 원리를 거스르는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 민주화가 재벌 개혁이라 한다면 그것을 따로 포장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이미 반세기 넘게 재벌 문제와 씨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모두가 잘 아는 재벌 문제에 관한 낡은 주장을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매력적인 구호로 자신의 주장을 포장하려는 충동은 자연스럽지만 중요한 선거를 앞둔 지금 재벌에 대한 거친 공격을 경제 민주화로 포장하는 일은 시민들을 현혹하려는 시도다.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해롭다.

복거일 경제평론가 소설가

:: 필자 소개 ::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비명(碑銘)을 찾아서’ ‘자유주의 정당의 정책’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등의 저서가 있다.
#동아쟁론#경제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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