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노들섬 광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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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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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문화부장
유윤종 문화부장
일요일 조금 일찍 집을 나와 차로 강변북로를 달려보았어. 차창 밖 노들섬은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올가을엔 익은 벼이삭으로 황금물결을 이루겠지.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겠더라. 두 전임 시장은 이곳에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을 만들겠다고 했지. 강 복판에 공연장이 있다면 눈길이 갈 거야. 여러 나라가 물가에 랜드마크를 세우는 이유도 그거니까.

랜드마크가 중요해? …라고 할지도 모르겠네. 올해 국내 출간된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여행기’를 볼까. 세계 여러 기업이 30여 년 전엔 호주 지사를 대부분 멜버른에 두었지만 오늘날엔 대부분 시드니에 두게 됐지. 책의 저자 브라이슨도 예전엔 자기 책 호주판을 멜버른에서 냈지만 이젠 시드니에서 낸대. 이유가 뭘까? 저자는 두 도시의 차이는 미미하다고 얘기했어. 단지 멜버른에만 있는 것이라면 독특한 우회전 규칙과 호주식 풋볼에 대한 애정, 시드니에만 있는 것이라면 오페라하우스(1973년 건립)와 하버브리지라고 썼더군.

광대한 나라에서 자기들끼리 경쟁한 이 두 도시와 달리 서울은 가까운 외국 도시들과 경쟁하고 있어. 1998년 세워진 상하이 국가대극원(國家大劇院)의 웅장함과 현대적 시설을 보면 놀랄걸. 중요한 건 극장을 채울 예술가들인데, 우리는 이 점에서 경쟁력이 커. 우선 노들섬 공연시설의 예술감독으로 유력했던 정명훈은 서울시향을 지휘해 세계 최고권위의 DG 레이블에서 음반을 내고 있는, 그야말로 희소한 존재야.

최근 벨기에 공영방송 RTBF는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한국인 음악가들이 유럽 주요 콩쿠르를 장악하는 비결을 분석했지.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의 경우 최근 결선 진출자의 절반 정도를 한국인이 차지하거든. 그 비결로 다큐는 ‘교육열’과 ‘꼼꼼한 커리어 관리’를 꼽았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이 예술가들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공연장을 채우면 그 자체로 문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의 존중을 받지 않을까?

알고 있어. 지금의 서울시는 ‘큰 상징물’ ‘경쟁’보다는 나눔과 참여를 강조하지. 그런데 오페라극장과 콘서트홀은 나눔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곳일까? 동아일보는 지난달 음악 전공 학생 16명과 음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쟁은 치열하고 진로는 한정된 음대생, 해법은’을 놓고 토론을 열었어.(본보 6월 5일자 A10면 참고) 학생들은 “대학만 들어가면 황금빛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기회의 문이 좁을 줄 몰랐다”며 한숨을 쉬었지.

복합공연장 한 곳 짓는다고 해서 이들의 어려움이 해소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유독 연주가에 비해 음악팬의 비율이 적다는 우리나라에서 ‘랜드마크 공연장’이 가져올 사회적 세계적 관심이 기폭제가 되고, 전국에 고전음악 열풍을 불러올 수도 있겠지. 우리 청중의 절대수는 적지만 내한 연주가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듯 대학 동아리와 인터넷 동호회를 중심으로 한 이들은 ‘인상적으로’ 젊은 청중이고, 그만큼 확대 잠재력이 크거든.

이 글 하나 썼다고 해서 노들섬에 극장이 다시 추진되긴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설계와 디자인 공모에만 수백억 원을 들인 이 극장이 이제 ‘물 건너갔다면’ 물 건너 어딘가에라도 아름다운 공연장이 꼭 생겼으면 좋겠어. 그때 우리가 한강변 어디엔가 서서 저 멀리 빛나는 공연장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처음엔 ‘환상곡’ 같은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두서가 없다 보니 ‘광시곡(狂詩曲)’처럼 돼버렸네. 더운 여름에 건강하고, 한번 만나서 얘기 나누자, 친구!

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노들섬#랜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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