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주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봄꽃 축제를 만끽하는 인파로 활기가 넘친다. 그 안에서 국회사무처는 헌정 사상 최초로 300명의 의원들을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정봉주 전 의원은 자신의 책 ‘달려라 정봉주’에서 “국회의원이 직장인처럼 매일 국회로 출근하는 줄 몰랐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한 초선의원만 140명으로 전체 의원의 절반에 이른다.
새누리당 강길부 송광호 최봉홍, 민주통합당 박지원 당선자는 올해 70세다. 반면 30대 초반인 민주당 김광진(31), 통합진보당 김재연(32) 당선자도 있다. 여기에 탈북자 출신 조명철, 이주민 출신 이자스민 당선자도 민의의 전당에 오른다.
19대 국회는 다양성 면에선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가히 ‘무지개 국회’다. 18대 국회가 줄곧 정치적 악천후로 휘청거린 터여서 더 반갑다. 기상이변마냥 18대 국회는 온갖 정치이변을 쏟아내며 헌정사의 각종 기록을 갈아 치웠다.
국회 개원을 위한 첫 임시국회에서 국회의장을 뽑지 못한 유일한 국회가 18대다. 국회 임기 시작 41일 만에 ‘지각’ 개원하며 출발부터 신기록을 세웠다. 18대 임기가 시작된 2008년 5월 30일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개원 날짜부터 지키지 않으면 18대 국회는 장래가 없다”고 꾸짖었다. 불행히도 그의 예견은 적중했다.
18대 국회에서 여야는 마주 달리는 폭주기관차였다. 지난 4년간 단 한 번도 여야 합의로 정부예산안을 처리한 적이 없다. 매번 몸싸움을 했고 2010년 예산안 처리 때는 의원들의 주먹질까지 벌어졌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지난해에는 통진당 김선동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다. 해머에서 최루탄으로, 공중부양에서 주먹질로, 난장판 국회의 끝없는 다운 그레이드에 국민은 두 손을 들었다.
여야는 늘 최선도, 차선도 아닌 최악을 택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치킨 게임(자동차를 마주 달리다 피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을 벌이자 이명박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선발효-후재협상’ 카드를 꺼냈지만 야당은 귀를 막았다. 새누리당을 떠난 정태근 의원이 단식까지 하며 협상을 촉구했지만 정치권은 결국 동반 몰락의 길로 갔다. ‘대립→직권상정→폭력’의 무한반복 속에 ‘아메바 국회’라는 말까지 나왔다.
1990년대 히트곡인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이어지는 가사는 ‘다시 처음으로 모든 걸 되돌리고 싶어’다. 18대 국회에선 지독히도 ‘슬픈 예감’이 적중했다. 19대 국회가 모든 걸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실망스럽게도 벌써 싹수가 노랗다. 개원도 하기 전 제수씨 성폭행 의혹을 받는 새누리당 김형태 당선자가 자진 탈당 형식으로 쫓겨났다. 논문 표절 의혹에 휩싸인 같은 당 문대성 당선자의 당적 유지 여부도 논란이다. 쇄신을 표방했는데 오히려 파렴치가 싹텄다.
그나마 국회폭력방지법이라도 처리한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쟁점법안을 처리하려면 60%의 찬성이 필요해 폭력이 사라지는 대신 일도 안 할까 걱정이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협력을 기대하는 건 환상이다. ‘폭력 국회’가 ‘무능 국회’로 바뀌면 진일보인가. 또다시 ‘슬픈 예감’이 밀려온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