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력(視力)은 눈 밝은 동물과 비교할 때 보잘것없다. 5m 앞의 시력검사표 맨 아랫줄 기호나 숫자를 판별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시력이 2.0이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타조의 시력은 무려 25.0, 매 9.0, 독수리와 갈매기는 5.0이라고 한다.
배드민턴 셔틀콕의 순간 최고 속도는 시속 320km, 테니스 서브는 300km, 배구 서브는 110km에 육박한다. 이런 속도의 스매싱과 서브가 라인 바로 옆에 떨어졌을 때 육안으로 정확히 인-아웃을 판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비디오 판독이 도입됐고 특히 테니스에서는 ‘호크 아이’라는 첨단 장비가 오차범위 3mm까지 판독해 내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심판을 보는 스포츠 종목에선 오심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4일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 5차전 동부-인삼공사 경기가 그랬다. 심판진에게 ‘할리우드액션의 대가’로 ‘낙인’ 찍힌 동부 김주성은 1쿼터에 이미 반칙 3개로 발목이 잡혔다. 3쿼터에 급기야 파울 트러블(4반칙)에 걸린 김주성은 완전히 평정심을 잃은 표정이었다. 주축 선수가 흔들리면서 동료들도 동요했다. ‘순둥이’로 불리던 동부 외국인선수 로드 벤슨까지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즌 내내 재심 청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동부 강동희 감독마저 종료 45초 전 역대 포스트시즌 퇴장 감독 1호가 됐다. 이에 흥분한 동부 팬들이 플라스틱 생수병을 코트로 마구 던져 물바다가 됐다. 정규시즌 1, 2위 팀의 맞대결은 명승부가 아닌 난장판이 됐다.
심판 판정의 요체는 공정성과 일관성이다. 몸싸움이 심한 농구에서 공격자 반칙-수비자 반칙의 경계는 애매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심판도 인간이기에 실수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선 오심의 ‘빚’을 갚기 위해 ‘의도된 오심’으로 손해 본 팀에 유리한 판정을 해서는 안 된다. 오심은 결코 경기의 일부가 될 수 없다. 오심은 경기를 망치고 팬들을 격분하게 만드는 독(毒)일 뿐이다.
필자는 ‘그날 경기의 어떤 것이 오심’이라고 시시콜콜 따지려는 게 아니다. 그럴 능력도 따질 자격도 없다. 판정은 전적으로 심판의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은 한 시즌의 대미를 장식하는 큰 잔치다. 선수는 물론이고 각 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관심과 열정이 정규 시즌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심판은 그 피날레 무대의 사회자이며 조정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날 심판 3명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휘슬을 연이어 불어 선수와 감독을 줄줄이 퇴장시킨다고 심판의 권위가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과 무명선수 또는 비선수 출신 심판 사이에 보이지 않는 우월감 또는 자격지심이 감정싸움을 낳고 판정에도 미묘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두 분야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부치 하먼과 데이비드 리드베터가 꼭 타이거 우즈나 박세리보다 골프를 잘 쳐서 수만 달러의 레슨비를 받아가며 그들의 스윙을 교정해 줬던가.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구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법이다.
‘경기가 끝났을 때 심판이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아야 한다’는 야구 격언이 있다. 선수보다 자주 심판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TV 중계를 누가 보고 싶어 하겠는가. 화학반응 속도를 조절하지만 반응이 끝난 뒤에도 원상태로 존재하는 물질을 촉매라고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의 역할이 꼭 그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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