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친구를 소개받는 미팅 자리에서 군대와 축구 얘기는 피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군대에서 축구한 사연은 퇴짜 맞기 딱 좋다고 한다. 최근 불거진 축구 스타 박주영(27)의 병역 연기 파문도 달갑지 않다. 박주영은 모나코 왕실에서 10년 장기 체류 자격을 얻어 만 37세가 되는 2022년까지 병역 연기를 받았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박주영은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심정일 게다.
이런 사태가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박주영이 태어나기도 전인 1979년 1월 8일자 본보 4면에 실린 ‘기자의 눈’ 칼럼은 ‘차범근과 병역 문제’를 다뤘다. 차범근은 1978년 12월 방콕 아시아경기를 마친 뒤 서독으로 건너가 다름슈타트와 가계약입단을 마치고 데뷔전까지 치러 ‘차붐’을 막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공군 사병 신분으로 제대를 5개월 남기고 있었기에 관계 당국의 소환 통보를 받았다.
본보는 ‘차범근 케이스는 앞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하나 한국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만큼 운영의 묘를 제안했다. 탈영 처리라는 으름장까지 들었던 차범근은 귀국길에 올라 만기 제대 후 독일로 건너가 분데스리가에서 11시즌 동안 98골을 터뜨렸다. 허정무도 24개월 동안 해병대에서 복무하고 제대 23일 만에 유럽으로 건너갔다.
전설의 4할 타자였던 백인천(69)은 1962년 한국인 최초로 일본 프로야구에 뛰어들었다. 도에이와 가계약한 백인천은 1년 후 병역의무를 위해 귀국한다는 조건으로 출국 허가를 받았다. 4월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백인천의 목소리는 그 시절을 묻자 5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들떴다. “천운이 따랐죠. 내 나이 19세였거든. 원래는 무조건 군대에 가야 하는 20세인데 호적 신고가 한 해 늦게 됐어요. 안 그랬으면 못 갔죠. 매국노라며 혈서 편지를 보낸 사람이 50명도 넘던 시절이었어요.” 일본에서 맹활약하면서 입영을 미룬 백인천은 1970년 귀국해 27세의 나이로 육군에 들어갔다.
“축구에서 30세면 환갑이다. 30대에도 전성기를 맞는 야구, 골프와는 다르다.” 차범근의 경신고 동기인 안기헌 한국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축구에 유난히 병역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병역을 피하려고 멀쩡한 무릎에 메스를 대거나 초등학교만 마치고 학업을 포기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 축구가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이후 우승이 없는 현실을 ‘금메달=병역 면제’에 대한 선수들의 강박감 탓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유명인의 병역 논란은 한반도 안보 상황에 큰 변화가 없듯 반세기가 넘도록 되풀이되고 있다. 박주영의 입대 연기가 꼼수인가 묘수인가를 따지는 단편적인 공방보다는 보편적인 정서와 실익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병역 제도 개선을 위한 전향적인 태도가 절실하다. 특혜 시비와 일반 병역 대상자와의 형평성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솔로몬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해외 진출 선수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 입영 시기를 조절해 주거나 개인 특기를 공익에 활용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태극전사나 피아니스트, 기사(棋士) 등이 군 복무 중에 소외받고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면 보람이 있지 않을까. 물론 신성한 병역의무를 성실히 이행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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