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오세정]과학기술도 오만에 빠지면 위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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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객원논설위원·기초과학연구원장
오세정 객원논설위원·기초과학연구원장
모레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해 3월 11일 일본 동부를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는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가장 큰 피해를 주었다는 점에서 인재(人災)의 성격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원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성물질 때문에 복구 작업을 시작하지 못한 곳이 많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원전과 주변 환경을 수습하는 데 수십 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만든 과학 문명의 혜택이 저주로 변한 꼴이다.

후쿠시마 재앙 부른 전문가 오류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원자력발전은 대표적인 예지만 그 외에도 산업화로 인한 이산화탄소(CO2)의 발생, 유전자 조작을 이용한 식품산업의 발전 등 지구 생태계와 인류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여러 요소가 있다. 과학기술자들은 기술개발 과정에서 위험성을 줄이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듯 100% 안전이라는 것은 누구도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문명의 혜택을 포기하는 것은 분명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지구 온난화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동안 산업화가 인류 삶의 질과 복지 향상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자동차가 내뿜는 오염가스 때문에 그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듯이 인류는 결국 과학문명의 유용성과 부작용 사이의 경중을 따져 선택할 수밖에 없다.

특정한 과학기술의 유용성과 부작용을 따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과거에는 전문가들에게 그 임무를 맡겨 놓고 대중은 전문가들의 판단을 믿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이러한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전문가들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뿐 아니라 전문가들의 잘못이 생활에 엄청난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대중이 깨달은 것이다. 그렇기에 일반인들도 비록 지식이 불완전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되었고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과 같은 문제는 대중의 합의를 따를 수밖에 없게 됐다. 이제는 과학지식이 전문가에게서 일반인에게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와 일반인이 서로 대화하는 양방향 통행이 된 것이다. 앞으로는 과학기술자가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국민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그 기술을 실제로 사회에 적용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극단주의자 거짓정보 경계해야

쌍방소통 시대에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지려면, 과학기술자나 일반인이 갖추어야 할 금도(襟度)가 있다. 우선 과학기술자들은 전문가의 오만에서 벗어나 국민의 눈높이로 내려와야 한다. 과거처럼 전문가라는 권위를 이용해 일방적인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 일반인들도 인터넷에서 얻은 조각 지식으로 근거 없는 편견을 형성하지 말고 선입견 없이 진실에 다가간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생업에 바쁜 일반인들이 사회의 중요한 모든 이슈를 이해하고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부 극단주의자가 퍼뜨리는 거짓 정보나 감정적 조작을 분간하고 자신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이성적인 판단을 할 만한 소양을 갖추는 것은 필요하다. 물론 전문가들은 이슈의 핵심 쟁점을 걸러내고 객관적인 판단 자료를 제공해 일반인들의 합리적인 판단을 도와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는 매우 다양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처지에 따라 서로 의견이 다르고 심지어 사실관계조차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우리는 혼돈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평론가 아나톨 칼레츠키는 최근 “세계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4.0이 필요하다”면서 ‘오만한 독단’을 배격하고 ‘겸허한 회의주의’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즉 사회의 의사결정 단계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생각도 포용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한국 사회는 이러한 포용력보다는 오만한 독단이 득세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국회의원 공천도 어느 당을 막론하고 과학기술자,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다양한 분야를 배려하려는 자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와 다름없이 힘의 논리와 분파주의, 기득권 지킴의 싸움이 지배하고 있다.

이래서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제대로 된 길을 찾기 어렵다. 비교적 사실적 인과관계의 규명이 용이한 과학기술에 관한 이슈부터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다양한 관점을 배려하면서 합리적인 공동체 합의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면 너무 비현실적 바람일까.

오세정 객원논설위원·기초과학연구원장 sjoh@mull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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