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이것만은…/이상은]올해로 데뷔 25주년…유럽-日순회공연 해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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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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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가수·작가
이상은 가수·작가
가만히 돌이켜 보면 하고 싶은 일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그렇게 20, 30대를 보냈던 터라 마음에 남은 아쉬움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열매를 맺는 단계에 이르렀다고는 볼 수 없다. 40대란 역시 그동안의 긴긴 준비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어야 하는 시간인가 보다. 이제까지의 다듬어지는 오랜 과정을 마무리하는 것이 버킷 리스트라면….

음악을 매개로 좋아하는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꿈이 좀 더 탄탄한 현실이 됐으면 좋겠다. 음반을 만들어 해외 시장에 보내고 인디든 메이저 마켓이든 상관없이 유럽 순회공연도 하고 일본 투어도 하는 꿈이 이루어졌으면. 요즘 아이돌 가수들을 보면 쉽게 한류 붐을 타고 해외 시장을 개척한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나는 싱어송라이터로서 나만의 색깔 찾기에만 10년을 보냈다. 방황의 시간 10년도 보탰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앨범을 만드는 방식을 터득하기 위해 레이블도 직접 만들면서 몇 년의 시간을 더 보냈다.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게 된 나는 다듬어지는 준비의 시간을 25년 가진 셈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예술가이니까.

스타가 되기보다는 자신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고 어느 정도는 이룬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의 음악이 더 넓은 세계에서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 소망이 조금씩 윤곽을 보이는 요즘이다. 해외 음반의 유통과 수입을 오랜 시간 해 온 한 레이블이 나의 음악을 세계 시장에 알리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 조만간 그렇게 꿈꾸던 런던과 뉴욕의 음악 페스티벌에 서게 될지도 모르겠다.

공연을 하게 된다고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앞으로 나올 15집, 16집이 좀 더 다양한 나라에서 이해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게 10년, 20년이 흘러 그래미 최우수 외국어음반상을 받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라 감히 말할 수 있겠지.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여담이지만 음악 하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요즘 TV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준비 기간에 고생을 하지만 한순간에 신데렐라가 되는 주인공이 많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흐뭇해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입상 이후 계약 문제, 음악의 방향성 문제 등에 부닥친다. 믿을 수 있는 멘토나 기획사를 찾는 것도 어렵다. 방송국에 가서도 여느 회사보다 더 매너와 예의를 갖춰야 인정을 받는다. 인터뷰나 콘서트 준비 등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시작은 화려하지만 그때부터 진정한 고난과 훈련의 시간이 시작된다고나 할까.

며칠 전 휘트니 휴스턴이 불행한 인생을 끝내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팝 프로인 ‘골든 디스크’팀도 당연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릴 적 너무 고음으로 화려하게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나중에 다시 부를 수가 없게 돼 정신적 고통에 휩싸인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같은 유대인들은 과대평가된 것 아니냐, 흑인들에 비해 백인들의 삶이 더 안정적인 것 아니냐 등등. 나도 한때 스타의 등용문을 통과해 스케일이 큰 노래들을 불렀지만 싱어송라이터의 길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 방향을 선회한 기억이 난다. 세계 시장에 나간다고 해도 아이돌들에 비해 화려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세계에는 진정성 있는 음악을 원하는 마니아가 많다. 여러 나라에 한 무리의 팬들이 있다면 충분히 재미난 활동을 할 수 있을 테다.

한순간에 큰 불꽃을 일으키고 사그라지고 싶지는 않다. 오래오래 묵직한 무쇠솥처럼 음악을 해나가고 싶다. 그런 좁은 문을 통과하는 길이 나에겐 필생의 업이라는 생각이다. 가늘고 긴 활동이 언젠가 큰 불꽃놀이로 축제가 열릴 순간이 바로 나의 버킷 리스트다. 다만 너무 빨리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버킷 리스트가 다 이루어지고 나면 또 다른 꿈을 꾸기 힘들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 매일 아침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한 걸음씩 걸어가는 이 하루하루가 모이면 언젠가는 큰 미래가 열릴 것이다. 미래는 하루하루의 삶이라는 조각들로 엮어진 퍼즐그림 같은 것 아닌가.

이상은 가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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