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홍권희]日-中은 유럽기업 사냥 바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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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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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권희 논설위원
홍권희 논설위원
그리스가 2009년 10월 숨겨놓았던 재정적자를 고백하면서 불을 붙인 유럽 재정위기가 깊어만 간다. 당장 2∼4월 만기가 되는 이탈리아 등의 국채가 제때 연장될지 여부가 문제다. 6월 말까지 핵심자기자본비율 9%를 지키려면 유럽 은행들이 155조 원을 확충해야 하는데 얼마가 실패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1998년 자기자본비율에 생사가 갈렸던 국내 금융계의 어려웠던 상황이 떠오른다.

M&A 시장에 헐값 매물 쏟아져

경제위기는 인수합병(M&A) 시장을 키운다. 일본은 엔화 강세를 기반으로 유럽 기업 헌팅에 나서고 있다. 일본국제협력은행은 유럽 기업 매입에 나서는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1000억 달러(약 114조 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었다. 재무상태가 안정된 일본 은행들이 이번 M&A 시장에서 한몫 단단히 챙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본 미쓰이스미토모파이낸셜그룹(SMFG)은 미국 중국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으로부터 항공기 임대 자회사 인수에 성공했다. 인수액이 72억 달러(약 8조2100억 원)에 이르는 큰 거래였다. SMFG는 보유 항공기가 90대에서 340대로 늘어나면서 업계 순위가 세계 15위에서 4위로 올라서게 됐다. 새로 확보한 항공기를 아시아 신흥국에 빌려주고 사업을 키워갈 것이다.

‘달러 부자’ 중국이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다.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은 최근 총 3000억 달러(약 342조 원) 규모의 펀드를 두 개 만들었다. 화메이(華美) 화어우(華歐)로 미국과 유럽에 투자하는 펀드다. 중국은 외자 유치에 몸이 단 유럽의 환대를 받아가며 알짜 기업을 골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3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의 투자대상을 다양화하는 숙제도 덩달아 풀게 됐다. 일부 중국 기업은 유럽의 유명 브랜드 기업을 인수하고 현지에 직원을 파견했다.

일본과 중국의 대형 자본은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정보를 챙겨가며 느긋하게 기다리는 전략이다. 미야타 고이치 SMFG 회장은 유럽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년 후 유럽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며 “지금으로선 서둘러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유럽 은행들이 향후 18개월간 매각해야 하는 비핵심 분야 자산이 2조5000억 달러에 이른다. 매물이 많으면 가격이 더 하락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에도 유럽 기업들의 러브콜이 몰리고 있다. 김교태 삼정KPMG 최고경영자는 “핵심기술과 글로벌 브랜드 또는 원자재를 국내 기업에 제공해줄 수 있는 유럽의 매물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동원산업은 스페인 최대의 캔참치업체 칼보로부터 지분인수 제의를 받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유럽 패션업체의 인수 제안에 얼떨떨해하는 국내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국내 연금 펀드 수익률 높일 기회

황록 우리금융지주 전무는 “금융과 서비스기업 등 다양한 매물에 대한 매입 오퍼가 들어와 일부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 최대 은행 산탄데르를 방문했더니 그곳 임원들이 ‘문화적으로 잘 통하는 지역 위주로 진출한다’고 강조했다”면서 “국내 금융계에 유럽 지역전문가가 부족해도 이번 진출 기회를 살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8조 원의 유럽기업 인수 지원자금을 준비했다.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은 “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 부동산 등에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사정에 밝은 중소 중견기업이라면 국민연금 사학연금이나 사모투자펀드(PEF)의 자금을 활용해 유럽기업 매입에 나설 수 있다. 유럽의 위기는 우리 기업에 유럽 진출의 좋은 기회다. 해외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젊은이처럼 국내 기업들도 유럽에 적극적으로 나갈 시점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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