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권순활]“몇 년 정신 안 차리면 금방 뒤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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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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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삼성을 이끄는 이건희 회장은 달변의 경영자가 아니다. 오히려 눌변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가끔 핵심을 찌르면서 화제가 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총수란 위상과 함께 곱씹어볼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년 전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 참석해 “10년 전만 해도 삼성이 지금의 5분의 1 크기에 구멍가게 같았는데 까딱 잘못하면 (다시) 그렇게 된다”며 우려했다. 올해 CES에서는 다소 여유를 보이면서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TV 갤럭시폰 등 우리가 앞서가는 것도 몇 개 있지만 더 앞서가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몇 년 정신 안 차리면 금방 뒤처지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더 긴장됩니다.”

이건희 구본무 회장의 위기감

지난해 실적 부진이 심각했던 LG 구본무 회장의 화법(話法)은 한층 직설적이다. 그는 며칠 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려면 정면으로 부딪치고 뼛속까지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끝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지장(智將),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용장(勇將) 스타일이라면 구 회장은 덕장(德將)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그가 ‘뼛속까지 바꾸라’는 강도 높은 말까지 한 것은 LG 내부의 적당주의와 패배주의에 대한 질책성 경고로 들렸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富)의 미래’에서 기업이 시속 100마일로 변화하는 반면 관료조직은 25마일, 정치권은 3마일 속도로 움직인다고 진단했다. 일본에서는 ‘기업은 1류, 행정은 2류, 정치는 3류’라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때로 기업도 물의를 빚지만 어느 정도 경제가 커진 나라라면 대체로 기업, 정부, 정치권 순으로 경쟁력 순위가 매겨진다.

국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우리 경제의 불안요인이 커졌다. 그러나 일각에서 주장하듯 한국의 경제현실이 암담하기만 하다는 인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국민소득 증가율, 실업률, 주식 채권 지표 등 주요 경제통계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공식 통계의 한계는 알지만 국내외 경제사에 기록되는 수치는 외면하고 비공식 주장에만 귀 기울이는 것은 정사(正史)는 무시하고 야사(野史)만 믿겠다는 태도와 비슷하다. 일본 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과 정치부장을 지낸 와타나베 쓰토무 국제보도부장은 작년 말 국제정세를 분석한 글에서 ‘힘을 더해가는 한국’이라고 썼다. 제3자의 관점이라는 점은 감안하더라도 해외의 시각에도 참고할 부분은 있을 것이다.

한국의 앞날까지 낙관할 수 있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요즘 우리 사회의 흐름을 보면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넘는 선진국 도약은커녕 현 수준의 상대적 경제력과 국력이라도 유지할지 걱정이다. 어느 경제인은 “여야 없이 쏟아내는 발언과 정책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운동권 출신의 실세(實勢)가 털어놓던 ‘1인당 소득 5000달러면 어때? 평등하게 나눠먹으면 되지’라는 주장이 떠오른다”고 했다. 언뜻 들으면 솔깃하지만 독약이 묻은 ‘1 대 99의 분할 논리’가 힘을 얻는 것도 위험한 징조다.

기업-국가에 모두 적용되는 경고

남들 위에 서는 사람은 밑에 있는 사람보다 자유가 제한된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을 우리 사회의 ‘가진 사람들’은 기억해야 한다. 시장에서의 경쟁과 공존을 조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경제성장을 도외시하고 계층 갈등론만 득세한다면 공동체의 미래는 어둡다.

기업이든 국가든 상승기와 하강기가 있다.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국운(國運)이 갈릴 것이다. “몇 년 정신 안 차리면 금방 뒤처진다”는 문제의식은 삼성뿐 아니라 한국에도 적용된다. 어쩌면 위기관리가 몸에 밴 삼성보다는, 다가오는 추락과 혼돈의 징후를 모르거나 외면한 채 달려가는 국가 차원에서 더 절실하게 와 닿는 경고일 수도 있다.

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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