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은지]수형자 합창단의 ‘특별한 공연’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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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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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지 문화부 기자
강은지 문화부 기자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사내들을 상상했다. 그러나 무대에 올라선 이들은 여드름투성이의 소년들이었다. 28일 김천소년교도소 수형자 18명으로 구성된 합창단 ‘드림 스케치’ 공연.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단원들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참회의 눈물로 방화, 폭행, 강간에서 살인에 이르는 죄를 씻어내려 애썼다. 객석은 흐느꼈다. 취재진들도 훌쩍이며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드림 스케치’ 단원들이 교도소를 벗어나 일반 공연장 무대에 서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합창단에 자원한 수형자는 원래 21명이었지만 이 중 2명은 “다른 교도소로 이감됐다”는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고 동료 단원들과 작별할 새도 없이 사라졌다. 한 명은 중도에 그만뒀다. “네가 무슨 노래냐”며 빈정대는 동료 수형자들과 싸워 독방에 갇혀 있느라 6개월 남짓 되는 연습 시간을 못 채운 단원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을 교도소 밖으로 내보내는 문제를 놓고 교도소와 법무부 내에서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합창단원을 지도해온 가수 이승철 씨가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게 해야 한다”고 간곡히 요청했다. “무조건 많은 사람 앞에 세우고 싶었어요. 아이들에게 ‘세상에 좋은 게 많구나. 나를 지켜보는 눈이 많구나’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죠. 음악을 통해 사람이 바뀌는 영화 ‘하모니’ 같은 기적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요.”

이날 공연장에 있던 사람들이 예외 없이 느꼈던 뜨거운 감동은 콘서트가 끝난 뒤에도 작은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공연을 위해 한시적으로 합창단을 운영했던 김천소년교도소는 합창단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소년들은 예전처럼 매주 한 차례 모여 합창 연습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승철 씨가 다니는 교회 신도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이들의 연습을 도울 예정이다. 이 씨는 내년 1월 2일 교도소를 다시 찾아 단원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다. “처음엔 흉악범으로 보였던 아이들의 눈빛이 지금은 해맑은 또래의 그것으로 보이게 됐어요. 음악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었던 지난 시간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소년들은 교도소 담장 안으로 돌아가 정장을 벗고 다시 죄수복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이들의 일상이 콘서트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욱하는 마음에, 혹은 사랑받지 못했다는 상실감 때문에 세상과 불협화음을 내온 이들이 계속 감동의 하모니를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가자 뛰어가자 내일의 태양 아래/우리 모두 함께 꿈을 꾸자’는 ‘드림 스케치’의 노랫말처럼.

강은지 문화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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