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심]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동아일보 입력 2011-11-15 03:00수정 2011-11-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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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 대한노인회 회장
얼마 전 젊은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 우리나라의 경어체계가 4단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예전에 우리가 쓰던 말은 높임법에도 단계가 있고 하대에도 단계가 있음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극존칭인 ‘하십시오’, 존칭인 ‘해요’, 약간 하대인 ‘하게’, 극히 하대인 ‘해라’ 같은 말이다.

이처럼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적절히 쓸 수 있는 다양한 말들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더없는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처음 만나는 사이에는 나이가 적어도 함부로 ‘해라’를 쓰지 않았고, 이는 말을 하는 사람의 인격을 표출하는 좋은 예였다.

허물없이 막역한 사이라 할지라도 적당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원래의 우리 문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드러운 말투는 사라지고 막말(?)만이 횡행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요즘 거리건 다방이건 주점이건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말들을 보면 듣기 민망할 때가 많다. “야, 이놈 김가야. 니 잘난 맛에 사니 좋으냐?” “이런 망할 놈이 누구 보고. 옜다 이거나 처먹어라.”

못 마시는 술 한잔에 허물없이 친구끼리 하는 말을 갖고 뭘 그리 따져 묻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젊은이들이 쓰는 욕설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도 머리 희끗희끗한 연륜 있는 사람들이 목청껏 높이는 ‘이놈 저놈’ 소리가 달가울 리 만무하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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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들은 장성한 자식이 장가를 가고 나면 대놓고 자식에게 하대하지 않았다. 어머니로서는 아들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철없이 어리게만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이는 자식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게 되는 격을 위해 그리한 것이리라. 아들을 보고 “자네 왔는가. 그동안 어찌 지냈는가. 아이들은 무탈한가”라고 물었다. 오랜만에 본 아들이 어찌 반갑지 않고,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반가운 하대 말이 왜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과거 어머니들의 마음은 그보다 더 큰 곳을 향해 있었다.

물론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싱그러운 젊은 날이라지만 품격을 갖춘 나이 든 사람의 멋도 그 못지않으리라. 사람의 품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말 아니겠는가.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를 보고 “이놈아 자리 비켜라” 하고 성을 낼 것이 아니라 “젊은이, 내가 다리가 아프니 자리를 양보해줄 수 있겠나” 하고 부드러운 말로 얘기한다면 정신이상자가 아니고서야 맞잡고 싸울 젊은이가 있겠는가.

세태가 우리 때와 다르다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우리 나이 든 사람들 스스로 품격에 맞는 언행을 하고 있는지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할 때다.

이심 대한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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