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52)의 사법연수원 13기 동기생 5명이 모두 검찰을 떠난다. 한 후보자의 동기생들은 나이가 52∼56세다. 이들의 집단 사퇴는 사법시험이나 연수원 동기 또는 후배가 검찰총장이 되면 동기생과 선배가 물러나는 기수(期數)문화 때문이다. 기수문화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사법부와 국가정보원, 경찰, 국세청에도 있다.
기수 문화는 서열과 위계를 중시하는 관료주의의 소산으로 대화와 토론보다 지시와 복종을 중시하는 비민주적 유습(遺習)이다. 검찰의 기수문화는 검찰이 철저한 상명하복 조직이란 것과 무관치 않다. 상명하복의 근거인 검사동일체 원칙은 2004년 2월 검찰청법 개정 때 폐지됐는데도 총장의 동기생 퇴진 관행은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총장 동기 퇴진 관행이 사라지면 경험이 풍부한 고위 간부들의 경륜을 살리고 총장의 독단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 조직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50대 초에 검찰 고위직에서 물러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전관예우(前官禮遇)를 조장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총장 동기 퇴진 관행으로 검찰이 너무 연소해지고 고위 간부들의 경험을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기수문화는 일본 검찰의 관행을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통상 62세에 검찰총장을 임명해 65세 정년까지 근무하게 한다. 우리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검사 정년은 63세, 총장 정년은 65세지만 60세까지 근무하는 검사도 드물다. 지난 20년 동안 검찰총장과 총장 후보자 16명의 임명 당시 평균 연령은 55세였다.
총장 동기와 선배가 사퇴하면 후배들의 승진 기회가 그만큼 늘어나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후배들의 보이지 않는 사퇴 압력도 작용한다. 그러나 장강(長江)의 앞물결을 밀어내고 나면 뒷물결도 곧 밀려날 차례가 온다. 검찰총장보다 선배기수가 고검장도 하고 지검장도 해야 부당한 정치적 압력을 막아내기 쉽고 검찰의 건강성이 강화될 수 있다. 검찰은 고도의 전문직이다. 꼭대기보다 한두 기수 빠르다고 사표를 강요하는 풍토는 검찰의 전문성을 약화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