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석훈]‘포크 배럴’과 나라 곳간 지킴이

  • 동아일보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연습도 없이 본게임이 이미 시작된 듯하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 2일 취임사에서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레오니다스가 이끌던 300명의 최정예 전사처럼 테르모필레 협곡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7월 6일에는 “포크배럴에 맞서 재정규율을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영어가 워낙 많이 섞여 있어서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라의 곳간을 튼튼히 지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박 장관이 목청을 높이던 한 달 사이 온 나라는 조건 없는 대학생 ‘반값 등록금’ 열풍으로 들끓고 있다. 집권여당 내부에서조차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 주장이 거침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다른 통계가 발표됐다.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한 내년 예산과 기금의 총지출 규모는 332조6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7.6%(23조5000억 원)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증가율은 최근 5년간 연평균 증가율 6.9%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돌파용 요구 예산이었던 2008년(8.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박 장관이 언급한 포크배럴은 전 국민의 세금으로 재원이 조달되지만 실제 이익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는 특정한 계층에게만 귀속되는 정부 지출을 의미한다. 미국 정치에서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용어다. 그러나 박 장관이 복지지출 요구 증대를 포크배럴에 비유한 것에 대해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국회의원을 포크, 즉 돼지에 비유했다는 이유를 들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에피소드를 보고 있노라면 개그콘서트를 따로 챙겨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실 재정부의 장관을 비롯한 전 직원은 여야 정치권과 각 부처의 예산 증액 요구에 맞서 나라 곳간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우리 재정부는 수십 년 동안 경제성장 과정에서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국가부채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며 정부 곳간을 지켜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재정 건전성이 과거에 비해 크게 훼손됐고 이를 복원하려는 시도는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여기에는 정치권과 국민의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그래도 1차적인 책임이 주무부처인 재정부에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중기재정계획에 따르면 우리 정부의 재정은 2013∼2014년 관리대상 수지 기준으로 균형을 달성하게 돼 있다. 글로벌 경제 시대에 소규모 완전개방경제인 한국 경제에서 재정의 건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욱이 언젠가 다가올 통일이나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를 생각하면 재정 건전성은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최후의 생명줄과도 같다.

쉽지 않은 싸움일 것이다. 그러나 재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는 의지와 지혜를 바탕으로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각종 요구에 대처해야 한다. 재정 총량 측면에서 건전성을 회복하는 경로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복지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상황이므로 유연하게 대처하되 원칙 있는 자원 배분이 중요하다. 각종 복지지출 중에서 재정 상황을 고려하여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법적 의무적 지출 이외의 추가적인 복지지출 재원은 연구개발이나 사회간접자본 등의 분야에서 지출 효율성을 통해 확보한 재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어린아이들에게 그리고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빚을 떠넘기면서 오늘을 즐기려는 부모는 부모 자격이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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