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타계한 동양그룹 창업주 이양구 회장은 생전에 두 사위를 끔찍이 아꼈다. 이 회장은 아들이 없고 딸만 둘을 둬 주변에서 ‘아들 같은 사위’라는 말이 나왔다. 재계에서는 일찍부터 동양가(家) 사위들이 차세대 그룹 경영을 이끌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 회장의 첫째 사위가 현재현 현 동양그룹 회장(62), 둘째 사위가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56)이다.
▷담 회장은 한국에서 태어난 화교 3세다. 미국 유학을 거쳐 1980년 동양시멘트 대리로 ‘처가 회사’와 인연을 맺은 뒤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46세 때인 2001년 동양그룹에서 오리온그룹이 계열 분리되면서 회장에 취임했다. 부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사장과는 서울의 한 외국인고교에 다닐 때 알게 돼 결혼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손윗동서인 현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미재계회의 회장을 맡으며 경제계와 관련된 대외활동이 비교적 활발했다. 반면 담 회장은 경제인들의 모임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기도 했다.
▷담 회장이 160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검찰은 그가 부인 및 측근들과 공모해 위장 계열사 임원에게 월급이나 퇴직금을 지급한 것처럼 꾸미는 등의 방법으로 회삿돈을 횡령했다고 밝혔다. 법인 돈으로 리스한 람보르기니, 벤츠 같은 고급 외제 승용차를 자녀 통학 같은 개인 용도로 무단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오리온그룹은 검찰이 횡령 또는 배임 액수로 보는 160억 원을 담 회장이 개인 재산으로 모두 변제했다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그렇다고 죄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는 오리온그룹을 급성장시키는 역량을 발휘했다. 중국 시장의 중요성에 일찍 눈떠 현지 공장을 세워 글로벌 제과업체로 키웠다. 제과 일변도의 기업에서 벗어나 영화 케이블방송 외식 스포츠 등 신규 사업에서도 성과를 냈다. ‘재벌가 사위’ 중 경영능력이 돋보인다는 평을 듣던 담 회장이 공사(公私)를 구분 못하고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여기다 한순간에 추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가와 사회에서 차지하는 기업 및 기업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일탈에 대한 책임을 엄격히 물으라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기업인들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일부 잘못된 구태(舊態)와 단절하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여가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