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親李 분열, 국정까지 표류시켜선 안 된다

  • 동아일보

4·2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한나라당의 쇄신 논의를 이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에 4선의 정의화 의원이 선출됐다. 비대위는 차기 당 지도부 선출 때까지만 유지되는 한시(限時) 기구이나 당 쇄신 논의를 주도하는 동시에 국정 운영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임무를 맡는다. 정 위원장은 친이(親李)계로 분류되지만 계파 색채가 뚜렷하지 않은 편이다. 정 위원장을 비롯한 13명의 비대위원 중 7명이 범친이계이면서도 중립 성향에 가깝다. 당연직 비대위원인 황우여 신임 원내대표는 중립 성향의 비주류이고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친박(親朴)이다. 비대위 구성만으로 보면 친이 주류 진영의 퇴조가 확연하다.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특임장관을 주축으로 한 친이 주류는 지난주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 분열했다.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의원들은 이 장관이 후원한 안경률 후보를 선택하지 않고 황우여 후보에게 투표해 안 후보를 낙선시켰다. 주류 내부의 갈등이 노골화된 것이다. 당 대표를 뽑는 6월 말이나 7월 초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상득 이재오 진영은 물론이고 당내 각 계파가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세(勢) 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물러난 주류 측 안상수 대표는 어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 정부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한 친이 주류가 변해야 한다는 명제도 분명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 운영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친이 주류의 분열이 국정공백 사태로 이어진다면 불행한 일이다. 친이 주류가 저축은행 사태와 고물가 행진 등 민심과 직결된 국정 주요 현안을 꼼꼼히 챙기지 않고 손을 놓은 것이 민심 이반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비대위나 원내 새 지도부가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선 친이 주류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친이-친박 계파 갈등에 친이 주류의 내분까지 겹쳐 국정이 표류한다면 한나라당은 떠나는 민심을 붙잡지 못할 것이다.

친이 주류 진영은 이제 세 대결에 집착하는 정치공학을 멀리해야 한다. 김영삼 정권의 주류 민주계, 김대중 정권의 주류 동교동계도 정권 후반기에 세 결집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 특임장관이 당내의 기류 급변에 충격을 받고 무리수를 둔다면 더욱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하는 여권 인사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차기 정권에서 호사를 누리겠다며 김칫국부터 마시는 사람들이 ‘권력 이합집산’에만 골몰하면 국민은 선거 때 이들의 뒤통수를 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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