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홍기택]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경영간섭 안 되게

  • 동아일보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된 논쟁이 치열해졌다. 지금은 국민연금이 제한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기업 경영에 간여할 필요가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수익률 제고를 위해 주식 투자 비중을 높인 결과 많은 기업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하이닉스의 지분 8.1%로 1대 주주이고, 지분이 5% 이상인 대기업도 포스코와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대한항공, 신한금융 등 전 업종에 걸쳐 있다. 국민연금 규모는 계속 커지고 현재 23%인 주식투자 비중도 2015년 30%로 확대될 계획이어서 더 많은 기업의 더 많은 지분을 소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주의 원칙에 따라 주식회사 지분이 있으면 주주총회에서 지분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정부가 국민에게 강제로 징수해 운영하고 이를 노후생활 안정을 위해 돌려주는 공적연금이다. 그러므로 국민연금의 운영주체는 정부가 결정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국민연금 지배구조를 중립적으로 한다고 해도, 정부 내지 정치권이 인사를 결정하기 때문에 중립이란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특히 우리같이 선진국에 비해 정치 사회 발전 수준이 낮고 투명성이 결여돼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감독당국의 부패와 무능으로 저축은행 부실 악화에다 불법 인출 사태가 발생하고, 민간부문 금융권 인사에까지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앞으로 우리의 의식수준이 향상돼 이런 문제들이 완화된다고 해도 국민연금은 시민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정치집단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하청기업과의 동반성장을 도모해 궁극적으로 국민 후생을 도모하자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 같은 연금사회주의적 주장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국민연금이든 개인이든 투자자는 수익 극대화가 목적이다. 주식 투자자는 해당 주식의 가치가 최대화돼야 투자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주주들은 경영진뿐 아니라 사외이사를 선임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감시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의 수익을 저해하는 정치권의 사회적 요구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초과이익 공유 같은 기업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행위에 당연히 반대한다. 만약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이런 행위에 동조하게 회사 경영을 유도하면 국민연금 운영자는 자신에게 연금을 위탁한 국민에 대한 성실 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연금 운영자는 임명권자인 정부의 정책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부지기수로 많이 발생할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도 그렇다. 기업 지배구조에는 모범답안이 없다는 것이 경영학계의 정설이다. 기업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극대화하면 주주들은 지배구조가 어떠하든 개의치 않는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 경영을 개선시켜 경쟁력을 강화하고 주주에게 이익이 되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 관계자가 이사 선임과 투자, 보상 수준 등 주요 의사결정 때 경영진보다 좋은 대안을 제시할 가능성보다는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기업 경영을 방해할 가능성이 더 크다. 왜냐하면 기업경영 환경과 내부조직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경영 전문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업의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신사업 추진이 어려워지고, 경영권 안정을 위한 추가 지분 확보 비용이 증가하는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유발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미국 예일대 로마노 교수와 같은 저명한 법경제학자들은 연기금, 특히 공적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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