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을 방문 중인 오세훈 서울시장이 어제 하버드대에서 가진 강연에서 “우리나라가 절체절명의 분수령에 있는 상황에서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의 주제는 ‘서울 시정(市政)’으로 예고됐지만 실제 발언에서 그는 전술 핵 배치, 원자력발전소 안전 문제 등 국가적 담론(談論)을 거론했다. 앞으로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는 유동적”이라고 말해 내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적극적인 의사 표현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대권출마 선언으로 해석하기에 무리가 없다.
오 시장이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자세를 취하면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독주하던 한나라당 경선 구도가 활기를 띨 조짐이다. 박 전 대표의 경쟁 그룹에 이미 포진한 김문수 경기지사, 정몽준 전 대표 등 예비주자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이다. 4·27 재·보궐선거 이후 정국의 주도권을 겨냥한 각 정파의 행보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권 주변에서는 이번 재·보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나라당이 현재의 안상수 대표 체제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는 무리인 만큼 보다 신선한 당 리더십을 국민 앞에 선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나라당 내 리더십의 변화도 앞당겨질 수 있다.
차기 대선 레이스는 많은 후보가 등장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무대가 돼야 한다. 뜻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한국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여 당원과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민주적인 시스템이다. 돈과 조직을 동원해 세(勢) 대결을 벌이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뛰어넘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 운영의 총지휘자다. 차기 정부 5년의 성패에 이 나라가 다시 한 번 도약하느냐 정체하느냐가 달려 있다. 경마 식, 인기투표 식이 아니라 정책과 자질 경쟁으로 유권자들의 냉철한 판단을 받는 대선이 돼야 한다.
오 시장이 어제 향후 거취에 대해 분명한 답변을 피한 것은 그동안 “시장 임기를 채우겠다”고 한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 논란을 비켜가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현행 선거법상 오 시장이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더라도 시장직은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직을 둘러싼 혼선에 대해서는 오 시장이 서울시민과 국민 앞에 떳떳이 태도를 밝히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