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순위 30대 그룹 가운데 총수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20개 비(非)상장사가 계열사와 주고받은 내부거래 비중이 46%에 이른다. 전체 계열사의 평균 내부거래 비중 28.2%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의 자녀가 지분 33.3%를 소유한 영풍개발은 계열사 사이의 매출이 작년 전체 매출 132억 원 가운데 98.1%인 130억 원이나 됐다. 롯데그룹의 롯데후레쉬델리카, 태광그룹의 티시스, 대림산업의 대림I&S의 내부 매출 비율도 80∼90%대다. 이 20개 비상장사의 실적은 5년 사이 평균 3.27배로 급증해 총수 자녀들에게 거액의 배당금이 매년 돌아갔다.
총수 자녀들이 세금을 거의 내지 않고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회사를 물려받는 행태는 시장경제의 건전성을 훼손한다. 기획재정부는 대그룹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에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기업 그룹 계열사들이 총수 자녀가 대주주인 비상장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기업 가치가 커지면 주식을 공개하는 편법 상속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감 몰아주기’에 약간의 세금만 물리는 데 그치면 편법 대물림의 관행을 제도화하는 잘못된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대그룹 비상장사를 통한 편법 대물림을 용인하는 국가가 공정사회를 논할 자격이 없다. 정부는 편법 대물림에 합당한 과세를 하고 공정거래법 등 관련 법규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굳이 새 제도를 만들지 않더라도 현재 있는 법률을 철저히 적용하면 부당거래를 막을 수 있다. 현행 법인세법의 부당행위계산 부인조항이나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내부거래조항, 상법의 최대주주 거래조항을 적용하면 계열사 간 부당거래에 탈세 탈루 혐의를 적용해 과세할 수 있다.
어디까지 정당한 거래이고, 어디부터 편법 대물림을 노린 ‘일감 몰아주기’인지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의 재량권만 커져 자의적 판단에 따라 잣대가 오락가락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세금을 매기고 불공정 거래를 단속하는 규정이 모호할수록 공직사회 부패의 토양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대형 비리의 근원이 시장의 불공정성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기업의 약점이나 비리 위에서 정치인 공무원 법조계가 공생하는 구조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