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벤처기업 매출 1조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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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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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산업부장
신연수 산업부장
김정주 NXC 회장(43)이 최근 미국 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명단에 올랐다. 김 회장은 총 20억 달러(약 2조22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해 세계 595위, 국내에서는 SK 최태원 회장, 롯데 신동빈 회장과 같은 7위로 평가됐다.

NXC는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등 온라인게임으로 유명한 넥슨의 지주회사다. 올해 넥슨저팬이 상장되면 김 회장의 재산은 7조 원에 달해 삼성 이건희 회장 뒤를 이어 한국의 부자 2위가 될 것으로 포브스는 내다봤다.

매출 1조원 벤처기업 잇따라 탄생

김 회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KAIST 대학원을 다닌 수재지만 처음부터 부자였던 건 아니다. 1994년 세계 최초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를 내놨을 때만 해도 직원들에게 줄 월급이 없어 대기업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알바’를 했다. 수개월 동안 밤을 새워 홈페이지를 만들어도 대기업 홍보실 직원들한테 “왜 이렇게 오자(誤字)가 많냐”는 등 구박을 받기 일쑤였다.

이후 게임 부분유료화, 게임용 선불카드 등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고, 성공적인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워 창업 17년 만에 세계의 부자 반열에 오르게 됐다. 현재 제주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일본 닌텐도나 미국 디즈니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꿈꾸며 미래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휴맥스를 창업한 변대규 사장(51)은 벤처 1세대다. 1989년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대학원생 시절 후배, 동기 등 6명과 함께 학교 근처에 사무실을 빌려 회사를 차렸다. 그가 창업자금 5000만 원을 구하러 기술신용보증기금에 찾아가자 창구 직원은 “집도 없는 하숙생이 보증 받으러 온 건 처음”이라며 황당해했다고 한다.

전자제품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추세를 읽고 노래방 자막과 TV 셋톱박스로 성공한 휴맥스 역시 쉬운 길을 걷지 않았다. 1997년 초 이탈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수출한 제품에 심각한 하자가 발견돼 수출이 끊겼고, 그해 말엔 거래하던 대기업이 도산해 부도 직전으로 내몰렸다. 수차례 위기를 이겨내고 지난해 처음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벤처기업인증을 받은 국내 2만5000여 개 벤처기업 가운데 지금까지 매출 1조 원을 돌파한 회사는 모두 3개.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과 스마트폰을 만드는 팬택, 그리고 휴맥스다. 올해는 넥슨, 서울반도체, 디에스엘시디, 엔씨소프트가 1조 클럽에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없이 새로운 기술만으로 기업을 설립해 매출 1조 원을 달성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살아남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공신화는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양질의 일자리가 점점 부족해지는 우리 사회에 밝은 빛을 던진다.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것은 물론이다. 첨단 신기술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에서 나온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우린 아직 배가 고프다. 더 많은 벤처기업이 매출 1조 원을 넘어 중견기업과 대기업으로 쑥쑥 커야 한다. 지난 40년 안에 창업해 대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는 웅진, 이랜드 등 3, 4곳에 불과하다.

벤처 성공신화 이어지려면

벤처기업인들은 현재의 잘못된 기업생태계가 변하지 않는 한 성공이 이어지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이 돈을 빌리는 데 대표이사 개인이 연대보증을 서야 하는 제도, 공정하지 못하고 투명하지 않은 시장이 문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인재와 기술을 빼앗고, 협력업체에는 생존할 만큼만 이익을 남겨줘 연구개발을 할 여지를 주지 않는 풍토도 문제다.

“구글 애플 같은 회사를 계속 만들어내는 미국식 혁신을 이룰 것인가, 추종자에서 선도자로 부상했다 도태하고 만 일본식으로 갈 것인가가 5, 6년 내에 판가름 날 것”이라는 변대규 사장의 경고가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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