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일성 왕조 미화’ 교과서로 한국사 가르칠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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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부터 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새 한국사 교과서에 북한 관련 내용이 상당 부분 왜곡돼 있거나 친북(親北)적 관점에서 기술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 K 연구실은 시중에 출판된 6종의 새 한국사 교과서를 분석한 보고서를 최근 내놓았다. 새 한국사 교과서는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 근현대사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현대사의 일부로 북한의 역사를 함께 서술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새 교과서는 북한의 권력 세습, 인권, 핵 개발, 식량 위기에 대해 북한을 일방적으로 감싸거나 책임 소재를 외부에 돌리는 경향을 드러냈다. 김정일의 권력 세습에 대해서는 6종의 교과서 가운데 1종을 제외하고는 ‘세습’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권력 계승’ ‘후계 구축’ 등으로 기술했다. 문명사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3대에 걸친 권력 세습을 ‘계승’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사실도, 객관적인 평가도 아니다.

5종의 교과서는 폭압 정권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인권도 외면했다. 인권을 거론한 교과서조차도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등의 인권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북한 이탈 주민 문제’라며 초점을 흐렸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눈을 속이며 두 차례 핵실험까지 했고 핵을 엄연히 보유하고 있음에도 ‘의혹’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대북(對北) 강경책이 북한의 핵 개발을 초래한 것처럼 서술한 대목도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사태에 대해서도 북한 정권의 책임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내용의 교과서로는 북한 사회의 실상을 학생들에게 올바로 가르칠 수 없다.

새 교과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좌(左)편향 역사교과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법정소송 같은 진통을 거쳐 편찬된 것이다. 그럼에도 교과서 내용이 북한을 내재(內在)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객관성과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는 현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좌경적 기술은 집필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국사학계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민족주의 역사관이 지나쳐 북한 역사의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국사학계 일각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학계에서는 북한의 현대사를 꼭 교과서 안에 포함시켜야 하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정부는 학생들이 북한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교과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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