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최영해]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美의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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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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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모든 죄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제 가족을 추악한 선거운동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공화당의 존 엔선 상원의원(네바다)은 7일 자신의 지역구인 라스베이거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2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00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재선한 데 이어 상원의원으로 올라섰지만 불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여성 보좌관과의 부적절한 혼외 관계 때문이다. 2년 전 혼외정사 스캔들을 일으켰던 그는 뒷수습을 위해 혼외정사를 한 여성 보좌관의 남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나아가 비즈니스까지 도와주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엔선 의원의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부인도 같이 나와 고개를 숙였다.

2012년 총선 불출마 선언은 공화당에서 케이 베일리 허치슨 의원(텍사스)과 존 카일 의원(애리조나)에 이어 3번째다.

총선 불출마 바람은 민주당에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당에선 켄트 콘래드 의원(노스다코타) 등 4명이 불출마 대열에 합류했다. 무소속으로 민주당 성향인 4선 의원 조지프 리버먼 의원(코네티컷)도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가족을 데리고 나와 기자회견을 했다. 1월 5일 미국 의회가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미 8명의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이다. 이들이 불출마를 결정한 이유는 모두 다르다. 엔선 의원처럼 스캔들 파문으로 일찌감치 거취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재선에 연연하지 않고 남은 기간 의정활동에만 충실하기 위해 결단을 내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시민의 권리와 사회적 정의를 지지하며 경제성장과 강력한 국방을 이끈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정치는 나의 정치이기도 합니다. 2012년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대신 도전에 직면한 미국을 위해 남은 임기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1월 19일 코네티컷 주 스탬퍼드에서 열린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리버먼 의원이 비장한 표정으로 불출마 선언을 했다. 유대인계로는 처음으로 2000년 민주당 부통령을 지낸 그는 4선 의원으로 지명도가 높아 당선 가능성이 있는데도 정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선거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고 미 언론은 평가했다. 상원 예산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콘래드 의원의 1월 18일 불출마 선언도 인상적이다.

“수개월간의 숙고를 거쳐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은 14조 달러에 이르는 국가채무와 높은 해외원유 의존도 등 심각한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어 재선운동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겠습니다.”

올해 86세로 상원의원 가운데 유일한 하와이 원주민 출신의 민주당 대니얼 아카카 의원(하와이)은 지난해 말 하와이 원주민 자치법안이 상원을 통과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3월 2일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의원들이 왜 일찌감치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는지 속뜻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물론 더는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해 출마를 포기한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거취를 일찍 정리하는 의원들의 모습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현직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다른 후보를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여러 허물에도 불구하고 공천을 따내기 위해 막판까지 눈치를 보며 당 지도부에 매달리는 서울 여의도의 국회의원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미 상원의원들의 잇따른 불출마 선언을 지켜보며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모습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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