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치영]브라질-아르헨 국운, 리더가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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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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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뉴욕 특파원
신치영 뉴욕 특파원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보면 마치 시간이 100여 년 전에서 멈춰선 도시 같다. 도심 곳곳에는 중세 유럽풍의 낡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1894년에 건설된 스페인 로코코풍의 대통령궁, 1906년 완공된 그레코로만 양식의 국회의사당, 1908년에 건설된 남미 최고의 ‘예술의 전당’ 콜론극장 등 관광명소가 된 건물뿐 아니라 사무용 빌딩 같은 일반 건물조차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20세기 초 세계 10대 선진국이었던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듯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새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1월 말 이 도시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취재를 다니는 동안 새 건물이 올라가는 걸 본 적이 없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첫인상은 아르헨티나가 처한 현실과 비슷하다. 비옥한 땅과 풍부한 천연자원 등으로 한때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던 이 나라는 퍼주기식 복지 지출과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2001년 해외 빚에 대해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대외신인도는 땅에 떨어졌다.

1940년대 집권한 후안 페론 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전통은 아직도 아르헨티나를 옥죄고 있다. 정치인들은 복지 지출을 늘려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고 저소득층은 이런 점을 악용해 하루가 멀다 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더 달라’고 요구했다.

어떤 지도자도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이 나라 중산층은 이런 현실에 좌절한 지 오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옷가게에서 15년째 점원으로 일하며 세 자녀를 키우는 안드레아 나바르 씨(40)는 “일은 별로 하지 않고 정부 생계보조금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브라질의 현실은 딴판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처럼 포퓰리즘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발목이 잡혀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던 브라질은 요즘 활기에 넘친다. 경제중심지 상파울루의 도로에는 차가 넘쳐난다. 도로 인프라가 늘어나는 차량을 소화하지 못해 몇 년 전 20분 걸리던 출근길이 지금은 1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다. 경제발전으로 소득이 늘면서 쇼핑몰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고속 성장에 따라 가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편입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고층빌딩과 고급 아파트촌이 지어져 서울의 강남과 같은 고급 주거지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브라질 국민은 이게 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 덕분이라고 말한다. 노조 지도자 출신인 룰라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분배’에 치우치지 않은 중도 실용주의 정책을 꼽는다. 아르헨티나의 대통령들처럼 가진 자의 것을 세금으로 거둬들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데 몰두했다면 브라질이 세계 8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외국인투자가 매년 기록을 경신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사람들은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다. 반면 브라질 사람들은 “몇 년 내에 세계 5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이처럼 남미를 대표하는 두 나라의 운명을 가른 것은 결국 지도자였다. 아르헨티나의 지도자들에게는 정권 유지가 가장 큰 목표였지만 브라질에는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가 있었다. 제2의 도약을 꿈꾸는 한국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지도자를 선택하는 국민의 안목이 왜 중요한지…. 바로 이것이 우리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상반된 현실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다.

신치영 뉴욕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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