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A 국회의원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지역 내 초중고교 입학식 행사는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다. 축사(祝辭)를 할 때도 있지만 축사가 없더라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뒷말이 생긴다. 향우회 같은 각종 소모임 행사에도 얼굴을 내밀어야 한다. 이렇게 꼭 챙겨야 하는 행사가 하루에 적어도 4, 5건이다. 임시국회 대정부질문 기간(2월 24일∼3월 2일)에 A 의원의 국회 출석률은 절반 정도에 그쳤다.
경제 분야 대(對)정부질문이 있었던 지난달 28일 오후에는 한나라당 친이계 핵심 중진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차기 원내대표 출마가 유력한 이 중진의 행사에는 이상득 의원을 비롯해 한나라당 의원 80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같은 시간 대정부질문이 진행된 국회 본회의장보다 더 많은 의원이 참석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공천과 당직을 챙기자면 본회의장 의석을 지키는 것보다는 중진의원의 눈도장을 받는 편이 유리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행사나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행사에 참석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국회 본회의장을 지키는 의정활동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이번 임시국회에서 대정부질문이 끝날 때까지 의원이 자리를 지킨 재석률은 평균 16% 정도였다. 대정부질문이 진행된 나흘 동안 개근한 모범 의원은 여야 통틀어 3명에 불과했다. 국회의원이 본회의장에 나오지 않는 것은 학생이 수업을 빼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정부질문에 임하는 의원들에게서도 국정을 진지하게 따지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지난달 28일 방청석에 앉은 지역 주민 130여 명을 의식한 듯 지역구의 보금자리주택 관련 토지 보상가가 낮다는 민원성 질의에 15분이나 할애해 눈총을 받았다. 대정부질문은 의원이 의정보고서에 담을 사진을 만드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냉소가 나오고 있다. 낭비적 요소가 많은 대정부질문 제도를 시대에 맞게 손질할 때가 됐다. 비슷한 현안을 대정부질문과 상임위에서 중복으로 다루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국력 낭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