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허승호]조 목사님, 이거 경제문제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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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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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한국은 비슷한 교세의 여러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적으로 드문 나라다.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는 한국을 ‘종교평화 모범국가’로 선정해 그 비결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과 관련해 갈등이 깊어지고 있어 걱정스럽다. 조용기 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수쿠크법에 반대하며 “교회에 대적하고 성한 국가나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나중에 “과도한 표현이었다”며 물러서긴 했지만 ‘대통령 하야 운동’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길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도 법 찬성 의원에 대한 낙선운동을 언급했다.

수쿠크법, 특혜 아니라 차별해소다

한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또 조계종은 템플스테이 예산 때문에 지나치게 정치적인 행보를 보여 국민을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이번 개신교 일각의 언행은 정교(政敎)분리의 헌법 원리를 정면 부정하는 것으로 지금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최근 중동국가들은 풍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세계 자본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서방 선진국은 물론이고 말레이시아 중국 일본 등도 이 돈을 유치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유대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도 수쿠크 발행에 나섰다.

우리 정부는 2008년 이슬람권 중앙은행들이 세운 이슬람금융서비스위원회(IFSB)에 준회원으로 가입했다. 2009년 9월에는 수쿠크와 관련해 면세를 주 내용으로 하는 법안도 발표했다. 작년 12월 여야 합의로 국회 기획재정위 조세소위를 통과했다. 그러다가 한전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건설사업을 따낼 때 수주액 186억 달러 중 100억 달러를 빌려주기로 한 합의가 공개되면서 법안이 뒤늦게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슬람에 특혜를 주려는 것일까? 이 질문에 올바로 대답하려면 수쿠크의 특성부터 살펴야 한다. 이슬람 율법은 이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금융거래 대신 ‘형식적 실물거래’를 만들어낸다. 예컨대 차입자가 대부자에게 자기 건물을 팔고 매각대금을 활용하면서 이자 대신 건물 사용료를 지급하는 식이다. 만기가 되면 반대매매가 이뤄진다.

문제는 부동산이 오가면서 취득·등록세 양도세 부가가치세 등 채권에는 없는 세금이 발생한다는 것. 수쿠크법은 이 같은 차별을 풀어 이슬람채권 거래의 물꼬를 트자는 취지다. 종교가 아니라 경제 문제이며, 특혜가 아니라 차별 해소인 것이다.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은 “수쿠크 수입의 2.5%가 자선에 기부(자카트)되는데 이 돈이 알카에다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자카트가 실제로 테러단체로 흘러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증이 없다. 타 종교의 자선사업에 대해 함부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기독교의 십일조에 대응하는 이슬람의 자카트는 석유무역, 건설·플랜트 등 ‘소득이 발생하는 모든 경제행위’에 부과된다. 만약 자카트가 겁난다면 이슬람권과 거래를 다 끊어야 한다.

세속주의, 문명국가의 기본요건

‘공적 영역에서의 활동과 의사결정은 오직 객관적 사실과 이성에 입각해야 하며 종교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세속주의 원칙은 현대 문명국가의 기본요건이다. 미국의 경우 기독교 국가로 건국됐고, 아직도 기독교의 힘이 세지만 정치-제도-교육 등 공적 영역에서 정교분리 원칙이 철저하다. 9·11테러 직후 미국 내에서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사건 엿새 만에 이슬람사원을 방문해 “알카에다와 이슬람은 다르다”고 선언했다. 반면 우리는 장로 대통령이 집권한 후 일부 개신교계가 오만과 독선에 빠진 것 같다.

정말 한심한 것은 찍 소리 못하는 여권이다. 교회 일각의 반발이 전해지자 대통령과 청와대는 굴종적 침묵을 계속하고 있다. 여당은 수쿠크법을 그냥 포기할 태세다. 헌법에 대한 도전을 묵과한다면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만한 용기 있는 지도자’라고 볼 수도 없다. 진짜 낙선운동 대상은 이런 사람들이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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