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헌진]중국과 빅브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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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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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며칠 전 그 문제에 대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고위 외교관은 베이징(北京)에서 중국 중앙정부 고위관리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이 외교관은 중국 관리를 만나기 직전 베이징에서 수천 km 떨어진 중국 남부의 한 성(省)을 방문했다. 그는 그곳에서 성 정부 고위인사와 면담했고 내용은 보도되지 않았다. 그런데 중앙정부 고위관리가 그의 면담 내용을 화제로 삼은 것이다. 그는 “상당한 수준의 정보공유 시스템을 운용하는 듯하다”며 당혹스러워했다.

한국의 한 경제연구소 소장도 중국의 정보력에 놀란 적이 있다. 지난해 청와대 자문위원으로 선임된 그는 발표 당일 아침 지인인 중국의 한 경제연구소장으로부터 축하 e메일을 받았다. 그는 “한국어를 모르고 한국 인터넷에서 인사 동정란을 검색할 리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내 동정을 알았을까”라며 어리둥절해했다.

두 얘기 모두 최근 1년 사이의 일이다. 중국 공산당의 정보관리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경험자들 모두 혀를 내두른다. 정보가 어떻게 수집돼 가공 배포되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핵심 관영언론인 신화(新華)통신이 일반 기자와 내참(內參·내부참고)기자를 나눠 운영한다는 정도의 단면만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내참은 각 곳에 촉수처럼 배치됐고 그들의 정보보고는 최고기밀 절대기밀 비밀 등으로 분류돼 최고 지위부로부터 차등 배포된다고 알려졌다.

이런 정보시스템은 정보화 물결 속에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사례는 수두룩하다. 신화통신은 16일 중국 전역의 최말단 파출소 7만여 곳까지 공안정보 전산망이 운용되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에 따라 공안부(중국의 경찰청)는 전국 공안과 위성을 통한 동시 생중계 화상회의가 가능해졌다. 전국의 공안에 대한 일사불란한 통합지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신분증 지문 차량번호 등을 통한 신원확인도 실시간으로 가능해졌다. 얼마 전만 해도 범죄자가 시골로 도망치면 현지 공안은 그의 신원을 즉각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또 시골 파출소에서 수집된 정보도 전산망을 통해 전국적으로 통합 관리된다. 나아가 공안부는 국가안전부(중국의 국가정보원), 외교부, 은행감독기관 등과 정보공유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휴대전화번호 실명제를 시작했다. 각 지역의 호적망도 통합 관리되고 있다. 한국의 약 100배나 되는 넓은 땅에 의지해 총각 처녀 행세를 하며 여러 번 결혼하는 중혼(重婚)도 어려워졌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돈 게 최근의 일이다. 게다가 중국의 숙박시설은 이미 실명제로 운영된다. 숙박자는 반드시 신분증을 제시해 등록해야 한다. 업주는 이 정보를 현지 공안국에 제공한다.

이런저런 정보시스템이 결합 공유되면 재산정보, 출입국정보, 위치정보 등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국가의 손아귀에 놓이게 된다. 행정 효율화를 높인다는 미명 아래 진행되는 정보화가 인권 침해 우려를 낳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보관리를 통한 국가 통치의 효율성 확보와 사생활 보호 같은 인권 보호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려면 정보시스템의 운용 권한을 규정하고 남용을 감시 및 방지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 중국 정부는 다양한 정치세력 및 시민단체의 견제를 제도적으로 막고 있다. 유무선 전화, 휴대전화 및 메신저 등에 대한 도청·감청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생활 보호는 곳곳에서 침해되고 있다. 오히려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공권력에 의한 사생활 침해는 더욱 효율적으로 변하는 추세다. 중국에서 ‘빅브러더’의 존재는 디스토피아(dystopia·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의 반대말)적 예언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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