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尹을 책임 있는 자리 보낸 순간 시작
韓 정당 ‘자기 후보’ 내 선거 치를 역량 없어
정당이 발굴-육성-공천 뒤 결과에 책임져야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우리 정치 공동체는 매우 길고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그 터널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한다는 점이다. 또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이 터널은 한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가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문제라는 점이다.
지난주로서 꼭 1년이 된 비상계엄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가 현재 겪고 있는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 혹은 드러난 현상이라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 싶다. 중계되는 재판을 통해 새삼 민낯을 드러낸 윤석열 전 대통령은 차치하고서라도 내란 행위에 가담했거나 최소한 방조한 혐의를 받는 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 생각은 확연해진다. 극단적 리더십의 부재, ‘유아적’이라고 부를 만큼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이해도 덕성도 없는 이들이 버젓이 ‘사회지도층’이라는 이름으로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비상계엄의 선포가 비극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책임 있는 자리에 선출되고 뽑혔던 순간이 이미 비극이었다.
역사 깊은 민주주의 이론의 한 조류는 이러한 엘리트들의 역할에 상당한 의무를 부여한다. 민주주의야말로 전문성과 덕성을 겸비한 리더십 없이는 운영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말한다. “민주주의 성공의 첫 번째 요건은 정치적 인적자원(the human material of politics)-정당을 운영하고 의회에 선출되며 내각에서 역할을 맡는 이들-이 충분히 높은 자질(high quality)을 갖춰야 한다”고.
‘인적자원’의 문제는 결국 우리 사회의 정치 엘리트들이 어떻게 충원되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며, 여기서 한국 사회의 수많은 난제들과 마주하게 된다. 윤 전 대통령의 발자취만 더듬어 올라가도 관료 선발(고시)과 승진 시스템, 그리고 이들에 대한 재교육의 문제, 멀게는 우리 대학입시와 정치교육에 대한 논의까지 확대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지면에서 가장 적절한 논의는 우리의 정당들이 얼마나 충원과 공천이라는 기능에서 허약했으며, 이것이 우리 민주주의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라는 논점이다.
한국의 정당들이 ‘허약’하다는 것은 매우 도발적인 주장이다. 외형상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규모의 정식 당원을 보유하고 있고, 공천을 포함한 당내 거버넌스에서 당원들의 상당한 참여가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 지도부는 매우 강력한 권한과 실행력을 지니고 있어 소속 의원들이 자율성 있는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거의 모든 외형적 지표들은 한국 정당을 매우 강력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들은 ‘자기 후보’를 공천할 역량조차 없을 정도로 허약하다. 국민의힘은 2022년 대선에서 입당한 지 불과 석 달밖에 되지 않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후보로 공천하면서 최소한의 게이트키핑에 실패했으며, 그 상대방이었던 이재명 당시 후보 역시 민주당 내에서는 소수 계파 출신이었다. 6월 대선을 되돌아보더라도 국민의힘에서 유력한 후보들-김문수, 한동훈, 한덕수- 모두 당내 경험이 일천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본다면 우리 정당들은 당내에서 정치 리더십을 양성하는 데 실패했다.
정당이 정해진 절차와 조직 원리에 따라, 유능하고 충성도 높은 인물을 발견하고 훈련시키며, 공직 후보나 리더를 배출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정당이 시민과 당원들을 발굴하고 정당 프로그램을 통한 사회화 과정의 결과로서 공직 후보와 리더를 배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책임정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의 붕괴를 가장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한국의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본인들의 사조직으로 이뤄진 ‘선거캠프’를 운영하면서 정당의 공조직을 우회해 왔다는 사실이다.
정당의 역할은 공천 과정에서 임명장이 수여되는 순간 끝나고, 선거를 정당이 치르는 것이 아니라 선거캠프가 치르는 것이라면, 이곳에 책임정치가 설 자리는 없다. 정당의 공적 절차가 아닌 후보와의 사적 관계와 충성심이 당선 이후에도 지속되는 정치를 우리가 어떻게 보더라도 근대적인 정치라 부를 수 없다. 전근대적 사적 관계들-출신 고교와 비선 실세-이 정당의 책임정치를 대체한 곳에서 우리는 이미 2명의 대통령을 탄핵하고 파면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당 충원-정당 ‘인사팀’-의 위기와 동의어인지도 모른다. 미국 공화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속수무책인 것을 보더라도, 정당이 포퓰리즘에 가장 취약한 고리인 것도 알게 됐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민주주의보다 나은 정치 제도를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데 정당보다 더 나은 플랫폼을 발견하지 못했다. 정당이 어떤 인물들을 발굴해서 성장시키고 공천할 것인지가 정당의 존망을 좌우하는 문제라는 것, 우리는 그것을 책임정당제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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