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칠용]전통공예 지원종목 늘리고 산업분류번호 부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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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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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죽음과 관련해 예술가들이 최소한 4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예술인복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나라의 문화예술 정책은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으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정부가 모든 문화예술인들의 생계와 복지를 책임질 수는 없다고 보며 그들이 예술가로서 긍지를 가지고 안정된 생활 속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민족문화를 가진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현실은 중병이 들고 썩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됐다. 긴급처방을 쓴다고 하니 기대는 해 보지만 그 효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그동안 시행된 전통공예 관련 정책들을 보면 업계의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주무부서의 편의 위주로 해온 것이 사실이다. 관계기관에 공예과(課)는커녕 공예계(係)조차 없이 공예 발전을 운운하는 것이 좋은 사례다.

우리나라 공예 발전을 위해서는 첫째, 전통공예회관을 마련하고 전승 지원 종목을 늘려야 한다. 전통공예를 한곳에서 제작, 전시, 판매할 곳이 필요하지만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이렇다 할 전통공예회관이 없다. 전승되는 공예종목도 60여 개로 조선시대보다 못하다. 중국의 경우 540여 개 공예종목이 전승되고 있으며 상하이에는 400여 명이 200여 종의 공예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백공방(百工房)을 정부가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105개 공예종목이 전승되고 있고 전국에 184개 공예회관이 있다. 이제라도 공예종목 지정을 확대하고,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건물을 전통공예회관으로 개칭해 공예인들의 판로 확보에 활용해야 한다.

둘째, 전통공예 공방은 공장이 아니므로 ‘공장등록법’ 규제에서 제외해야 한다. 현행법은 도심지에서 200m² 이상 규모의 공장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전통공예업은 무공해 수공예업종이므로 이 법의 규제 대상에서 제외시켜 자유스럽게 제작, 전시, 판매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이트클럽과 노래방, 카바레 등 유흥업소는 규모가 크더라도 허가해 주고 있지 않은가.

셋째, 전통공예기능 전수활동은 업주와 직원 관계가 아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무엇이든지 만들면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로 보아 4대 보험이 적용되는 노동자로 취급한다. 공예기술의 전수활동은 스승과 제자 사이이므로 이 점을 인정해야 한다.

넷째, 우리 고유의 민속공예품들을 찾아 ‘산업분류번호’를 부여해야 한다. 전통인형과 옻칠공예, 한지공예, 천연염색, 노엮개(지승), 황포돛배 등 수천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만 전승돼 온 전통 수공예품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산업분류번호를 부여하는 데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 지금은 이 번호가 없기 때문에 조달청 입찰과 해외 수출, 납품 등을 전혀 할 수 없어 편법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와 특권을 포기하는 치욕적인 일이라고 본다.

얼마 전 부여 백마강에 띄울 황포돛배(한선) 수주 입찰 때 FRP 선박(공업용 배) 공장은 참여할 수 있었지만 한선장인 경기도 무형문화재 김모 씨는 입찰에 참여할 수 없었다. 관계기관에선 ‘유엔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품목이어서 고유번호를 부여하기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밖에도 수많은 난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우선적으로 이러한 몇 가지 사안만이라도 개선된다면 한국공예 발전에 초석이 될 것이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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