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증권회사 직원은 투자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중소기업 탐방을 할 때 눈여겨보는 것 중 하나가 여비서라고 했다. 여비서의 외모가 눈에 띄게 화려하거나 임원실의 소파며 장식장이 너무 고급스러우면 최고경영자(CEO)가 초심을 잃었거나 내실보다 외형에 신경 쓰는 회사일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에 삶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나온다. 건물 세우기와 정원 일구기. 건물을 세우는 사람은 세상의 주목을 받지만 일을 끝내는 순간, 자신이 쌓아올린 건물 안에 갇혀버린다. 정원을 일구는 사람은 거친 날씨와 싸우며 쉬지 않고 일해도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건물과 달리 정원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일구는 사람의 관심을 끝없이 요구하면서 그의 일생에 위대한 모험을 선물한다.
경남 거제, 통영에서 종종 휴가를 보낸다. 산과 바다, 몽돌해변과 백사장, 통통배와 컨테이너선이 지척에 공존하는 다양한 면모에 끌려서다. 맛깔스러운 먹을거리도 다채롭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곳 상인들의 ‘헝그리 정신’ 부재를 타박했다. “세계적인 조선소 두 곳 덕분에 돈이 넘쳐나 서비스 마인드가 안 돼 있다”는 것.
그런 면이 좀 있다. 작년 크리스마스 연휴, 점심을 먹으러 간 통영의 소문난 멍게비빔밥집엔 빈자리가 없었다. 문간에 서서 10분쯤 기다리는 동안 밥집 주인네 누구도 우리 세 식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겨우 빈자리가 나서 “앉아도 되겠느냐”고 묻자 그제야 “지금 식사 안 되는데요”라는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전국적 명성을 자랑하는 꿀빵집은 사흘 내리 찾아갔지만 맛을 못 봤다. 마지막 날은 오전 11시가 좀 넘어 문을 두드렸으나 “다 팔렸습니다”라는 덤덤한 한마디를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아내가 “세 번이나 왔는데…”라며 입맛을 다셨지만 미안하다거나 언제 다시 오라든가 하는 살가운 응대는 없었다. ‘30년 만의 한파’가 몰아치던 날이다.
서운함을 덜어준 건 서호시장 사람들이다. 생선 좌판 할머니는 고기 한 마리 안 사고 복국집 위치만 묻는데도 굽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 ‘단디’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을 이어갔다. 제법 걷다 왠지 ‘뒤꼭지가 당겨’ 돌아보니 그때껏 나와 서서 그 집 방향을 가리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 5000원어치를 담아주던 ‘아지매’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덤을 몇 개씩 더 집어넣으며 웃었다. ‘원초적 초심’이 묻어났다.
2010년 12월 24일 통영의 밤바다는 황홀했다. 온 세상에 짙은 푸름이 은은하게 내리고, 섬세한 달빛은 꿈틀대는 밤바다의 잔물결 하나하나를 켜켜이 우아한 청회색으로 물들였다. 그토록 매끄러운 바다 살결을 눈부신 태양 아래선 본 적이 없다. 재즈바 이름에 왜 ‘블루문’이 많은지, 해운대 달맞이길을 왜 ‘Moontan Road’로 번역해놨는지 실감했다. 이번 통영길은 딱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족했다.
음력 설과 정월대보름이 머지않았다. 1월의 일출 앞에서 화려한 성장과 거대한 성취를 꿈꿨다면 달이 득세하는 2월엔 선탠 대신 ‘문탠’을 즐기며 마음속 잔물결을 헤아려 보는 게 어떨까. 달빛 머금은 바람결에 몸 맡기고 눈 감으면 까맣게 잊고 있던 초심이 귀끝을 간질이지 않을까.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마종기 ‘바람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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