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모형을 손에 올려두고 돋보기로 살펴보는 모습. 30년 이상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확대 논의 속에서 대출 조건과 금리 구조를 신중히 비교·검토하는 차주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게티이미지뱅크
금융당국이 30년 이상 ‘초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일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6%대 후반까지 오르며 7% 진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변동금리를 유지할지 장기 고정으로 갈아탈지 고민하는 차주들의 선택 기준도 달라질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신상품 출시가 아니다. 금융당국은 전세대출과 신용대출까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동시에, 민간 금융권에서도 30년 이상 고정금리 상품을 공급하도록 유도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대출 총량은 관리하되, 금리 급등 충격은 줄이겠다는 구조 개편에 가깝다. 핵심은 ‘금리를 맞히는 선택’이 아니라, 금리 충격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구조 문제다.
● 왜 지금 ‘30년 이상 고정’인가
그동안 국내에서 만기까지 금리가 고정되는 순수 고정형 주택담보대출은 대부분 정책모기지를 통해 공급돼 왔다. 2023년 기준 순수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의 약 85% 이상이 정책모기지였다. 민간 금융권의 초장기 고정금리 공급은 제한적인 구조였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채권연구센터장은 “이번 정책은 민간 금융기관도 초장기 고정금리 대출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급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초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시장 구조를 개선하려는 성격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책금융 중심이던 장기 고정금리 시장을 민간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라는 의미다.
배경에는 한국의 변동금리 중심 구조가 있다. 우리나라는 주요국에 비해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높은 편이며, 5년 혼합형 상품까지 포함하면 금리 변동에 대한 가계의 노출도는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시장금리 변동이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에 빠르게 전이되고, 금리 상승기에는 소비 위축과 부실 위험이 동시에 확대된다.
특히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로 글로벌 금리와 자본 이동, 환율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정 센터장은 “대외 충격으로 국내 금리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변동금리 중심의 가계부채 구조는 거시경제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정금리 비중 확대는 이러한 전이 속도를 완화하는 장치로 해석된다.
● 금리 내려가면 손해일까…핵심은 ‘갈아타기’ 가능성
금리 인하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30년 이상 고정금리는 소비자에게 부담처럼 보일 수 있다. 변동금리는 기준금리 하락 시 이자 부담이 자동으로 줄어들지만, 고정금리는 계약 당시 금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정 센터장은 이에 대해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는 초장기 고정금리 상품이 상대적으로 매력적이지 않게 보일 수 있다”고 전제했다. 다만 “초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확대의 정책 취지는 단기적인 금리 전망에 따른 선택을 유도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가계의 금리 변동 위험을 구조적으로 완화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금리 하락기에 차환(refinancing·대출 갈아타기)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면 고정금리가 반드시 손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초장기 주담대 금리는 장기 시장금리를 기준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시장에서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질 경우 그 기대 역시 일정 부분 대출 금리에 반영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변수는 가격과 비용이다. 고정금리 상품의 대출금리가 시장금리와 합리적으로 연동되는지, 중도상환수수료 등 차환 비용이 과도하지 않은지가 체감 손익을 좌우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변동금리를 이용 중인 차주라면 향후 스트레스 DSR 적용 확대 여부와 금리 변동 폭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고정금리로 갈아탈 경우 중도상환수수료, 향후 차환 가능성, 현재 금리 차이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 DSR·금융안정까지 연결…구조 전환의 의미
초장기 고정금리는 규제 환경과도 맞물린다. 금리 유형에 따라 스트레스 DSR 가산금리가 차등 적용될 경우, 동일 소득 기준에서 고정형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산정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는 세부 제도 설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금융 시스템 안정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정 센터장은 “초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면 가계의 매달 이자 부담이 급격히 흔들릴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지금처럼 변동금리 비중이 높은 구조에서는 금리가 오를 때 상환 부담이 빠르게 늘어나고, 이로 인해 일부 차주가 부실에 빠질 위험도 함께 커진다는 것이다. 이런 충격이 확대되면 금융권 전반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고정금리 비중이 높아지면 금리 상승 충격이 가계에 즉각적으로 전이되는 속도가 완만해질 수 있다. 다만 그는 “고정금리가 늘어나면 기준금리를 조정해도 가계 이자 부담이 즉각적으로 변하지 않을 수 있다”며 통화정책 효과가 나타나는 속도는 다소 느려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은행권에도 숙제가 남아 있다. 30년 이상 고정금리 대출을 꾸준히 공급하려면, 은행 역시 그에 맞는 장기 자금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기 예금으로 30년짜리 대출을 내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장기 고정금리 자산이 늘어날수록 자산과 부채 간 만기 불일치가 커질 수 있어, 이에 상응하는 장기 조달 수단을 갖추지 못하면 금리 리스크 관리도 어려워질 수 있다.
정 센터장은 이를 위한 대안으로 ‘커버드본드’를 제시했다. 커버드본드는 은행이 보유한 주택담보대출을 담보로 발행하는 장기 채권으로, 담보자산과 발행기관에 대한 이중상환청구권 구조를 갖고 있어 신용위험이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장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다만 정 센터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커버드본드 시장이 아직 충분히 활성화돼 있지 않다”며 시장 저변 확대와 투자수요 기반 확충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선택의 기준은 ‘지금 가장 싼 금리’가 아니라, 향후 10년·20년 동안 감당 가능한 상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제 대출 전략의 기준은 금리 방향을 예측하는 데서, 장기간 감당 가능한 상환 구조를 설계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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