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연순]창의력은 혼자서 키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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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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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순 이화여대 사범대학장
조연순 이화여대 사범대학장
사회의 여러 분야나 기업은 새로운 발상을 통해 새로운 전략과 방법을 창출해내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자원의 고갈과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대안을 요구한다. 이렇듯 어느 분야에서나 창의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므로 세계 여러 나라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창의성과 인성을 교육의 최상위 목적으로 상정하고 있다.

최근 필자를 포함한 창의성 연구팀은 과학 인문사회 예술의 세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창의적 인물 12명을 대상으로 무엇이 그들의 창의적 성취를 가능하게 했는가에 대해 심층면담을 했다. 결과를 세 측면으로 나누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지적 측면에서는 우선 전문분야에서의 튼튼한 지식기반이 중요 요소로 지적됐다. 우리나라의 정보기술(IT) 분야를 이끌어온 전문가는 “기초가 중요한 것 같아요. (중략) 예를 들어 컴퓨터를 배울 때 사람들은 워드프로세서부터 배우는데, 저 같으면 운영체제부터 배우죠. 속도는 느리지만 중요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면 나머지 부분들은 설령 공부를 안 했어도 유추가 가능하더라고요”라고 언급했다. 대부분의 창의적 인물 특히 과학 분야의 인물은 모두 기초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다른 중요 요소로 다른 영역과 연결할 수 있는 융합적 사고력이 부각됐다. 이러한 능력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그리고 다양한 영역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길러지고 촉진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격이나 동기적 측면에서의 중요 요소는 어려움에 대한 도전과 호기심, 일 자체에 대한 열정과 몰두도 있었지만 사회에 유익함을 주고자 하는 동기가 더 크게 작용했다. 한 타이퍼그래픽 디자이너는 “디자인한다는 것은 멋을 부리는 건 아니고요. 멋을 지어내는 거예요. 멋을 지어내는 목적은 (중략) 그러니까 삶에 이로워야 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새로운 시도를 했던 출판인은 “좋은 책으로 세상을 유익하게, 행복하게 하자는 게 제 모토니까요”라고 말하며,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고정관념을 없애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환경적 측면에서의 요소로는 자녀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도록 지원하는 부모의 허용적 태도가 중요하지만 때로는 부모 중 한쪽이 안 계시거나 결핍된 상황에서도 새로운 욕구를 창출했다. 또한 대부분의 창의적 인물은 형제가 많았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소질이 보이는 분야에 대해 적극적인 격려와 지원자, 그리고 멘터의 역할을 해준 교사가 영향을 줬다.

우리나라 해양과학의 모델을 제시한 과학자는 지식을 문자로 전달하기보다는 모든 현상 하나하나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친 중학교 물상 선생님으로부터 지식기반을 탄탄히 다졌다고 언급했다. 어느 경제전문가는 “환경의 격차를 느끼고 한참 충격에 빠져있을 때 격차를 메워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지금까지도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고 정서적 격려자, 지원자로서 교사의 영향을 강조했다.

한편 성인이 되어서는 사회적 집단 내에서의 수평적인 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한 방송인은 “저는 수직적으로 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권위주의는 창의력의 적이에요”라고 말했다. 예술영역의 어느 박물관 운영자는 “수평적 관계가 팀워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이러한 팀워크를 배울 수 있는 곳으로 학교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러한 결과를 볼 때 창의성은 한 가지 측면에서의 자극만으로 촉진된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개인이나 집단의 특성이 반영되어 주변 환경과 사회 등 다각적 측면에서 여러 가지 요인이 상호작용하여 창의적인 과정을 거쳐 새로운 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 시도하는 학교 교육과정 개혁의 노력도 교사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부모의 교육관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회적 풍토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분위기로 바뀌지 않는다면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우선 창의성이란 무엇인지, 교실 속에서 기를 수 있는 창의성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조연순 이화여대 사범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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