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사와 의원 ‘특권의식’ 스스로 추방해야

  • 동아일보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검사 때인 2008년 초 알고 지내던 건설업자의 고발 사건을 수사하던 후배 검사에게 ‘사건을 잘 봐 달라’고 청탁하고 업자로부터 그랜저 승용차를 받은 혐의로 전직 부장검사 정모 씨가 그제 구속됐다. 올해 7월 정 씨를 무혐의 처분하면서 “유죄판결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불기소 처분했다. 책임지겠다”고 말했던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검찰은 1차 수사 때 “청탁이 의례적인 수준이었고 건설업자로부터 받은 돈으로 그랜저를 샀다가 나중에 차 값을 돌려줘 대가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다시 의혹이 불거지고 여론이 악화하자 김준규 검찰총장은 특임검사에게 재수사를 맡겼다. 특임검사는 2주일 만에 정 씨가 청탁의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를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수차례에 걸쳐 1600만 원을 받은 것까지 밝혀냈다.

수사의 정석대로 의혹 관련자들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계좌추적을 한 결과였다. 검찰은 1차 수사 때 뇌물 사건 수사의 기본인 계좌추적도 하지 않았다. 같은 검찰 식구인 정 씨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반 공무원이 같은 혐의로 조사받았다면 검찰이 그토록 허술하게 수사하고 온정을 베풀겠는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백원우 의원이 발의하고 여야가 야합했던 정치자금법 개악 시도는 의원들의 특권의식을 잘 보여준다. 개정안은 정치 후원금 명세만 공개하면 후원자와 의원 모두 뇌물죄로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 입법 로비 사건의 수사 대상자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법을 만들려다 무산된 것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수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여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국익과 관련된 사안에는 철저히 정파적으로 대립하면서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문제에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통속이 된다. 검찰이 식구들의 비리와 허물을 적당히 덮어놓고 우리 사회의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두 사례를 보더라도 검찰과 국회는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특권의식에 젖어 있는 기관이다. 법치(法治)가 바로 서려면 법을 만드는 의원과 법을 집행하는 검사부터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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