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택균]‘건축가 대접’ 목소리는 높였지만, 자성의 소리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18일 03시 00분


“건축가의 자리가 없는 사회를 통탄한다.”

17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에서 새건축사협의회가 발표한 성명서 제목이다. 지난달 말 용산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식 때 설계를 맡은 건축가들이 홀대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함인선 협의회장은 “건축가가 앉을 자리조차 제대로 배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안중근 의사 숭모회 측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지만 답이 없다”고 말했다.

분기(憤氣) 가득한 발언이 줄을 이었다. 상암월드컵경기장 설계자인 류춘수 이공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완공식 때 VIP석에 앉기는 했지만 건물을 지은 공로자로 축구협회장, 서울시장, 시공건설사 대표만 호명되는 것을 지켜보며 치욕을 느꼈다”고 했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가에 대한 사회 전반의 무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잠실종합운동장을 설계한 고(故) 김수근 선생의 완공식 자리는 겨우 구청 건축과장 옆이었다. 이젠 아예 부르지도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행사 뒤 참석자들은 “구체적 방법론에 이견이 있다 해도 적잖은 건축가들이 ‘중요한 사회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지적 서비스 공급자인 건축가가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처음 한목소리로 문제제기를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격앙된 어조의 발언 내용은 하나의 초점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건축가의 현장감리 참여나, 건설사 중심의 ‘턴키 시스템’ 개선을 위한 현실적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건축에 무지한 관련부처 행정 관료를 건축가 모임에 아예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한 참석자의 말처럼 ‘감정’만이 절실하게 전달됐다. 한국 건축계의 주역으로서 어떤 실질적 노력을 했는지 용기 있게 자문(自問)하는 반성의 소리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

작은 설계사무소를 꾸리고 있는 30대 건축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해관계가 복잡한 제도를 바꾸기 어려우니 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사회의 인식부터 바로잡으려는 시도에는 공감한다”고 했다. 선배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글쎄. 그런 원망은, 맘속으로만 해야지 뭐. 하하.”

어려운 상황에도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건축사’냐 ‘건축가’냐 호칭 통일조차 못 하고 있는 것이 한국 건축계의 실상이다. 먹고살 길조차 찾기 힘든 젊은 후배들을 위한 자성과 통합의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기성 건축가들의 분노는 별 반향 없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말 것이다. ‘통탄’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 없다.

손택균 문화부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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