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인터넷, 의사의 칼과 강도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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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8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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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통계기관인 유로스타트는 지난달 주요 20개국(G20)의 각종 통계를 비교한 자료를 내놓았다. 한국의 16∼74세 인터넷 사용자 비율은 2008년 기준 77%로 G20 국가 중 1위였다. 캐나다 미국 일본 EU가 70% 안팎으로 뒤를 이었고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7%에 그쳤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분야에서 또 하나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올해 인구주택총조사의 인터넷조사 참여율은 44.3%로 최종 집계돼 종전 세계 1위였던 2006년 캐나다(18.5%)의 두 배를 넘었다. 통계청의 목표 30%도 크게 웃돌았다. 이인실 통계청장은 “예상보다 많은 국민이 동참하면서 192억 원 이상의 예산절감 효과도 거뒀다”며 기뻐했다.

순기능 못지않게 한국 인터넷의 폐해도 세계적 수준이다. 경기지방경찰청 및 일선 경찰서들은 8월부터 석 달간 인터넷 사기사범 1398명을 적발했다. 승용차에 혼자 있던 여성을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최근 검거된 범인 3명이 알게 된 곳은 인터넷 범죄모의 카페였다. 탤런트 최진실 씨 자살이나 ‘타블로 사건’처럼 인터넷을 악용한 ‘인격 살인’도 자주 일어난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캐스 선스타인 교수는 대중사회와 결합된 인터넷 시대에는 정보의 폭포화, 동조(同調)의 폭포화, 집단 극단화로 거짓 루머의 파괴력이 커졌다고 분석한다. 그는 “오늘날 루머는 정치인을 낙마시키고 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연예인의 목숨을 빼앗으며 급기야 민주주의의 기반까지 위협한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인터넷 현실에 바탕을 둔 경고겠지만 한국에서 더 설득력을 지닌다.

전경련 산하 경제홍보협의회는 대기업의 46%가 인터넷 언론의 오보나 왜곡보도로, 45%가 강압적 협찬·광고 요구로 고통을 겪고 피해를 봤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부 인터넷 언론의 도를 넘은 횡포에 산업계가 머리를 싸맨 지는 오래 됐다. “회사에서 퇴출돼 할 일 없으면 집에 컴퓨터 한 대 설치해 인터넷 언론사 만들어 먹고살아야겠다”는 기업 임직원들의 푸념성 농담도 심심찮게 들린다. 광우병 소동이나 천안함 음모론처럼 사실이 아니라도 특정 주제에 대해 강력한 정치적 함의를 갖는 체계적 망상(妄想)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우리 사회의 ‘편집증적 복합체’(홍성기 아주대 교수의 표현)의 궤변이 가장 기승을 부린 곳도 온라인 공간이었다.

인터넷 역기능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자신이 허위사실의 피해자라도 그런 소릴 할지 궁금하다. 근대 자유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인정돼야 하며 자유의 권리를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위험한 거짓 루머가 ‘생각의 시장’에서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것을 사법부가 적절한 처벌을 통해 막아야 한다며 선스타인이 ‘위축 효과’ 도입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비슷한 문제의식이다. 거짓 정보가 넘쳐나면서도 책임감도 죄의식도 희박한 인터넷 문화를 이대로 둔 채 ‘IT 강국’을 입에 올릴 수는 없다.

칼은 의사가 사용하면 환자를 살리는 이기(利器)가 되지만 강도의 손에 들어가면 사람을 해치는 흉기(凶器)로 바뀐다. ‘의사의 칼’과 ‘강도의 칼’이라는 속성을 함께 지닌 인터넷 세상이 범죄와 허위가 난무하는 난장판이 아니라 이번 인구조사처럼 긍정적 측면이 발현되는 장(場)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공동체의 미래도 한층 밝아질 수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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