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태원]오바마 정부의 정보유출 과민반응

  • 동아일보

시차로 인해 낮과 밤을 바꿔 살다시피 하는 기자는 본의 아니게 동네 이웃들의 의심을 산 경험이 있다. 거의 매일 새벽을 지나 동이 틀 때까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일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비교적 조용한 미국 타운하우스 단지에서 새벽의 정적을 깨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이웃들의 주의를 끌었던 것 같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이웃 주민들이 기자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했고 연방수사국(FBI)에 신고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국내 범죄수사를 주로 담당하는 FBI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에서 벌어지는 외국인들의 첩보활동을 포함한 간첩죄 수사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세계의 정부 공무원, 상사 직원, 언론인들이 모여 사는 워싱턴과 인근 지역에서는 실제로 FBI 요원들이 이들의 동향을 상세히 모니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8월 말 미국에서는 떠들썩한 간첩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한국계로 국무부 직원이었던 스티븐 김 씨가 북한과 관련한 1급 기밀 언론유출 혐의로 기소된 것. 미국 국방과 관련한 기밀정보 유출을 금지한 ‘간첩법(Espionage Act)’이 적용됐다. 김 씨는 지난해 6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는 결의(1874호)를 채택한 뒤 북한의 대응방향을 담은 기밀정보를 폭스뉴스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북한의 대응방향이란 3차 핵실험 가능성이었고 이 보고서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분야 업무를 다뤘던 한 인사는 사석에서 “내 전화를 누가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여러 차례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와는 정치적 지향이 다른 이 인사는 전화를 하다 어느 순간 통화감이 뚝 떨어지는 상황을 자주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또 소수계로서 백악관이나 국무부, 국방부 등에서 주요 정보를 다뤘던 인사들은 대부분 자택이나 사무실 전화를 도청당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아프간 전쟁과 관련한 기밀문서 등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는 2008년 대선 과정에서도 정보의 유출 문제에 대단히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2008년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져 가던 시점인 그해 10월 선거캠프는 외교안보분야 자문단 모임을 가졌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소장은 “당시 외교안보분과 모임 간사였던 데니스 맥도너 국가안보회의(NSC) 비서실장의 말은 캠프 내 정보유출 금지였다”고 말했다.

주권국가가 자신의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정보를 보호하는 데 적극적인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더욱이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10년 동안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거의 매일 테러의 위협에 노출돼 있는 특수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견 언론자유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전직 국무부 직원의 ‘기사 제보’를 간첩죄로 다루는 것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했던 제국의 여유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특히 보도를 한 매체가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신념에 반대하는 보수적 성향이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보인다.

한 번도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키지 않았던 미국을 바꿨던 오바마 대통령의 힘은 강력한 사회통합 의지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나왔다. 적법하지 않은 정보수집과 배타적인 정보독점이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방향이라고 여겨지진 않는다.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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