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구자룡]죄없는 연어와 중국의 보편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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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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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 중 ‘반체제’로 불리는 사람은 5, 6명 정도를 꼽는다. 독일의 카를 폰 오시에츠키(1935년), 옛 소련의 안드레이 사하로프(1975년),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1983년), 미얀마의 아웅 산 수치(199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1993년), 이란의 시린 에바디(2003년) 등.

이들은 나치 독일의 재(再)무장 폭로, 옛 소련의 열악한 인권 상황 개선, 공산주의 체제하 폴란드의 노동자 권리 쟁취, 미얀마 장기 군부 독재 타도, 남아공의 흑인 및 이란의 여성 인권 회복 등에 헌신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에게 상을 주어 인류가 한 걸음 진보하고 정의가 확산되도록 했다. 노벨상은 분명 인류 문화의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올해는 중국의 반체제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 박사가 중국 국적자로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지금 노벨위원회는 중국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에게 상을 주는 것은 노벨상을 모욕하는 것이자 중국에서 범죄를 격려하는 행위와 마찬가지”, “그는 실정법을 위반한 범죄자”라며 비난했다. 노벨위 위원이 노르웨이 국회에서 선정된다는 이유로 중국은 주중 노르웨이 대사를 밤에 불러 항의하고, 예정된 장관급 회담도 중단했다. 노벨위가 반체제 인사에게 노벨 평화상을 줬다고 해서 당사국으로부터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다.

중국과 일본 간에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을 놓고 갈등을 일으켰을 때 중국이 희토류의 대일 수출을 중단하는 강수로 일본을 굴복시킨 것처럼 중국의 경제력을 배경으로 한 대(對)노르웨이 강공 외교는 거침이 없다. 노르웨이 정부는 노르웨이산 연어의 최대 수입국이기도 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위해 올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지금 이 FTA 협상이 좌초 위기에 몰려 있다. 노벨위가 노르웨이 정부에 좌지우지됐다면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의 반체제 인사를 선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토르비에른 야글란 노벨위 위원장은 수상자 발표 직후 “중국이 급부상해 (다들 할 말을) 못할 때 우리라도 나서서 말해야 한다”고 기개를 드러냈다.

중국 내에서도 류 박사의 수상을 계기로 민주화와 정치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공개 서한 형식으로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공개 요구 서한 작성과 서명에 가담한 사람들 중에는 공산당 이념의 전파자인 신화통신과 런민(人民)일보의 전직 고위 간부도 있다. 특히 14일 중국 내 반체제 인사 등 120여 명이 발표한 정치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한에는 “중국 정부가 민주주의와 법치 그리고 다른 보편적 가치를 포용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중국이 개혁 개방 이후 높은 경제 성장으로 올해 미국에 이어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경제 성장에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기폭제가 된 측면도 있다. 세계 질서의 수혜자이기도 한 중국이 입맛따라 ‘보편적 가치’를 감탄고토(甘呑苦吐)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은 최근 북한의 3대 세습 과정에서도 평소 외교 원칙으로 내세운 ‘타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에 보증국으로 나선 모습이다. 끼리끼리 동맹국 우의는 다질지 모르지만 왕조시대도 아닌 21세기의 보편적 가치는 아니다.

노벨위는 “중국의 새로운 위상은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고 충고했다. 이제는 중국이 정치적으로도 ‘보편적 가치’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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