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규인]교사의 정치적 견해, 학생에게 강요할 권리 있나

  • 동아일보

EBS 강의를 맡은 현직 교사가 “남자들은 군대 가서 뭐 배웁니까. 죽이는 거 배워오죠”라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지인 한 사람은 문제의 동영상을 본 뒤 “요즘에도 수업 시간에 자기가 무슨 말이든 해도 괜찮다고 믿는 교사가 많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땐 선생님이 말하는 게 모두 정답인 줄 알았다. 선생님은 ‘정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며 씁쓰레했다.

대화 도중 6·2지방선거를 앞두고 받은 어느 학부모의 e메일이 떠올랐다. 그 학부모는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우리나라가 잘되려면 A 후보가 꼭 당선되어야 한다. 집에 가서 그 후보 찍으라고 부모님께 말씀 드리라’고 했다고 한다”라고 적었다. 아이는 집에 와서 정말 ‘아빠, 그 후보 꼭 찍어요’ 하더란다. 사실이라면 담임교사는 실정법(선거법)을 어긴 것이다.

사교육 강사도 거침이 없다. 유명 인터넷 강의에서 한 윤리 강사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를 설명하다가 “이승만 같은 인물이 당선된 순간 이 나라 정의는 끝장났다”고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타락해도 이렇게 타락한 나라가 없다”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묘사했다. 윤리 강의는 다양한 세계관을 배우는 시간이지 강사의 특정 역사관을 일방적으로 전해 듣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미국에서는 수업 시간에 진화론은 맞고 창조론은 틀렸다고 가르칠 수 없다. 학생 학부모의 종교적 믿음에 반할 수도 있는 내용을 공교육에서 가르치면 곤란하다는 이유다. 정치적 자유가 정점에 달했다는 프랑스에서도 교사가 수업 시간에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금기시한다. 법적 강제는 없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 학부모들이 즉각 반발한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특수 권력 관계 때문에 학생들이 사상의 자유를 침해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소신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건 아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사회를 보는 시각을 길러주는 것이 교과서 내용을 가르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면 그 철학도 존중하고 싶다.

그러나 교실 안에서는 언제든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지식의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면 성향의 주입식 교육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검색창에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입력했다가 발견한 글이 한 학생의 불평불만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A당은 맞고 B당은 틀렸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요. 이런 사람 밑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황규인 교육복지부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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