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엘렌 랭거는 어느 대학에 근무하는 비서 40명에게 “이 논문을 즉시 메신저 메일로 238호실로 돌려줄 것”이란 짤막한 메모를 남겼다. 메모지엔 누가 이 글을 남겼는지에 대한 서명도, 설명도 없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내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비서의 90%가 메모에 쓰인 대로 지시사항을 이행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인간본성을 보여준 유명한 실험이다.
▷창의력이 화두인 시대에 기계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뉴욕타임스 28일자는 몽상이야말로 상상력의 근원이라는 최신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인간은 주어진 시간의 30%가량을 몽상으로 보낸다.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걸 상상하거나 로또 당첨을 꿈꾸는 것은 몽상이다. 과학자들은 과업에서 벗어나는 생각, 판타지 등 온갖 종류의 딴생각을 몽상에 포함시킨다.
▷미국 샌타바버라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조너선 스쿨러, 피츠버그대 에릭 D 레이철, 앤드루 라인버그 박사는 사람이 얼마나 딴생각에 빠져드는가를 측정하기 위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센스 앤드 센서빌리티(이성과 감성)’를 읽게 하고 실험 참가자들의 안구 움직임을 측정했다. 안구의 움직임이 느려지거나 안구가 문장을 쭉 지나가면 딴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때 뇌를 스캔해 봤더니 과업에 매진하도록 하는 신경망과 원래 세팅된 신경망이 동시에 작동했다. 과업을 수행하다가 몽상에 잘 빠지는 사람들이 복잡한 단어 퍼즐 같은 문제를 더 잘 풀었다.
▷이런 연구결과는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문제를 붙잡고 늘어질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하거나 정원을 가꾸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복잡한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잠시 밀쳐두었다. 얼마 뒤 해결책이 떠오르는 일이 자주 있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은 초고를 쓰고는 한 달 이상 서랍에 처박아 둔다. 나중에 꺼내보면 이상한 묘사와 플롯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시간에도 무의식 속에서 열심히 퇴고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을 자유롭게 놓아주면 생산적인 방황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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