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몽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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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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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엘렌 랭거는 어느 대학에 근무하는 비서 40명에게 “이 논문을 즉시 메신저 메일로 238호실로 돌려줄 것”이란 짤막한 메모를 남겼다. 메모지엔 누가 이 글을 남겼는지에 대한 서명도, 설명도 없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내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비서의 90%가 메모에 쓰인 대로 지시사항을 이행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인간본성을 보여준 유명한 실험이다.

▷창의력이 화두인 시대에 기계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뉴욕타임스 28일자는 몽상이야말로 상상력의 근원이라는 최신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인간은 주어진 시간의 30%가량을 몽상으로 보낸다.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걸 상상하거나 로또 당첨을 꿈꾸는 것은 몽상이다. 과학자들은 과업에서 벗어나는 생각, 판타지 등 온갖 종류의 딴생각을 몽상에 포함시킨다.

▷미국 샌타바버라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조너선 스쿨러, 피츠버그대 에릭 D 레이철, 앤드루 라인버그 박사는 사람이 얼마나 딴생각에 빠져드는가를 측정하기 위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센스 앤드 센서빌리티(이성과 감성)’를 읽게 하고 실험 참가자들의 안구 움직임을 측정했다. 안구의 움직임이 느려지거나 안구가 문장을 쭉 지나가면 딴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때 뇌를 스캔해 봤더니 과업에 매진하도록 하는 신경망과 원래 세팅된 신경망이 동시에 작동했다. 과업을 수행하다가 몽상에 잘 빠지는 사람들이 복잡한 단어 퍼즐 같은 문제를 더 잘 풀었다.

▷이런 연구결과는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문제를 붙잡고 늘어질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하거나 정원을 가꾸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복잡한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잠시 밀쳐두었다. 얼마 뒤 해결책이 떠오르는 일이 자주 있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은 초고를 쓰고는 한 달 이상 서랍에 처박아 둔다. 나중에 꺼내보면 이상한 묘사와 플롯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시간에도 무의식 속에서 열심히 퇴고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을 자유롭게 놓아주면 생산적인 방황을 시작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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