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영혜]작은 재판, 큰 신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미워도 공정해야 불신 막는다
실력과 운 그리고 자유의 한계

얼마 전 인천법원에서 내가 변론을 맡은 상해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사건은 사회적 이목을 끄는 대단한 내용은 아니고 벌금으로 약식기소된 소위 작은 사건이었다. 1심에서는 ‘가진 자의 횡포’라는 피해자 측 주장이 통했는지 많은 공방에도 불구하고 벌금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지적에 귀 기울여 주었고 마침내 증거들의 모순과 신빙성 부족을 조목조목 밝혀 무죄를 선고했다.

사실 무죄판결은 법관에겐 부담이고 검찰엔 불명예다. 무죄판결은 유죄판결을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시간도 걸린다. 많은 사건의 부담 속에 그런 힘듦을 감수하고 그것도 작은 사건에서 치밀하게 기록을 살펴 무죄를 밝혀주는 법관의 성의와 노고는 대단하다. 재판을 받다 보면 법관이 내 얘기를 들어준다고 느낄 때의 고마움은 상당하다. 그런 마음으로 억울함을 밝혀 주는 행위는 작은 재판이 만들어내는 무한 신뢰라고 할 수 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건물의 일부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두면 머지않아 모든 유리창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은 범죄를 방치하면 그 사회적 폐해가 확대된다는 교훈으로 인용되는 말이다. 하나의 수사나 재판에 대한 실망이 검찰권 사법권을 넘어 국가공권력 전반에 대한 불신과 원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언론보도, 세금, 인허가 등 다른 영역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잘해야 한다. 미워도 공정해야 한다. 더구나 국민이 칼을 쥐여준 분야는 더욱 그렇다. ‘용용 죽겠지’ 식의 구형, ‘당해봐라’ 하는 듯한 판결, ‘감히 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해’라는 식의 사건 처박기는 엄청난 불신을 야기하는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6·2지방선거에 나타난 민심도 분석해 보면 분심(憤心)이었다고 한다. 건전한 대안의 민심이 아니라 그냥 기득권이 싫고 정권이 싫다는 화내기다.

비리나 부당함이 도마 위에 오를 때 그 해당 분야 종사자들이 겪는 낙담과 자괴감은 크다. 사실 비리나 부당보다는 성실과 정직이 훨씬 많다. 좋은 공무원, 좋은 검찰, 좋은 법관, 좋은 기자, 좋은 PD가 더 많은 것이다. 부정은 의당 비판받아야 하지만 지나치게 떠들썩한 일반화는 바로잡는 효과보다는 많은 이를 화나게 만드는 부작용이 크다. 다 부패했다고 확대해서 환멸하거나, 아닌 사람이 더 많은데 왜 다 문제 있는 것처럼 만드느냐는 내부 원망과 의욕 상실을 유발한다. 이렇게 모든 것은 양면이 있어 어려운 것이다.

세종시, 4대강, 천안함 사건 등을 보며 사람들의 생각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4대강 정비사업이 그렇게도 해서는 안 될 일인지, 정부부처가 이전해야만 균형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인지, 천안함 사건 발표내용을 못 믿으면 46명의 죽음은 무엇인지…. 그러고 보니 도롱뇽이 죽는다며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막았던 것, 환경 파괴라며 극렬한 반대가 있었던 새만금과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 나중엔 외려 경쟁적 유치의 대상이 됐던 것, 광우병 위험에 대한 촛불시위 후 지금도 그 위험성에 대한 인식과 증명은 유효한 것인지 등 여전히 모를 내용들이 많다.

한편 남아공 월드컵의 한국 대 우루과이전을 보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같다는, 긍정적 측면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기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잘하는 것을 보았기에 불만이 없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 평이 많은 걸 보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같다는 것을 확인한다. 사실 아무리 자기편이라도 잘못하는 것은 안다. 골 결정력 부족의 실력차도 보인다. 상대방 선수를 방어하는 건 좋지만 옷 잡고 늘어지는 모습은 부끄럽다.

월드컵은 이렇게 또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했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 같은 선수를 평준화로 묶어 놓았다면 그런 발군의 실력이 발휘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잘하는 이를 더 잘하게 만드는 것이 많은 이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보았다. 우리도 정치 경제 문화 분야의 많은 메시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심에 대한 비판이 많은 것을 보고 재판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어려운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공은 골대를 맞고 어떤 공은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고 운이라는 것도 무시 못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원문화는 독특한 축제로 자리 매김하고 있지만 거대한 인파 속 범죄와 질서 위반에 대한 대책의 어려움을 보았다. 추행이나 절도가 제대로 단속되고 검거될 수 없었다. 대규모 집회는 그러한 어려움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야간집회가 허용되지 않으므로 음식점 등 실내로 응원공간이 제한된다. 자유는 무한이 아니라 남의 자유와 모두의 인권 안에 제한되는 것이라는 실례(實例)를 본 것이다.

김영혜 객원논설위원·변호사 yhk888@paran.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