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되고 당당해 보이는 39세 전문직 여성. 회사에서 매년 지원하는 건강검진에서 흡연 여부에 대한 질문에 항상 머뭇거린다고 한다. 흡연 경력이 20년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난해 갑상샘 수치가 높고 폐기능이 많이 약화됐다는 진단을 받고 금연을 하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았다.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직업의 특성상 쉽게 금연을 못해 괴로움을 호소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흡연중독의 유형이다.
여성 흡연은 세계 많은 나라가 주목하는 문제이다. 날로 늘어나는 여성 흡연자의 인권과 건강문제, 담배회사의 마케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와 연관이 있다. 여성은 생리적 특성상 남자보다 금연이 더 어렵다고 알려졌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생리 전후 흡연 욕구가 증가한다. 금연을 하다가도 이 시기를 전후해 흡연을 다시 한다고 한다. 여성의 금연은 그래서 더욱 어렵고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필자는 직업상 반드시 금연을 하고 싶어 하는 혹은 해야만 하는 환자를 자주 대한다. 그러나 금연은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금연 3수생도 많이 보지만 큰 병을 진단받고도 흡연 욕구를 참지 못해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병이 악화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금연은 헤로인 코카인 알코올을 끊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중독성 질환이다. 그래서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흡연을 중독성 질환으로 규정하고 치료를 적극 권장한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흡연자의 70%가 금연을 원하지만 2∼3%만이 성공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어떤 악성 종양의 5년 생존율보다 낮은 비율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2년 국제질병분류 기준을 개정해 발표하면서 담배에 의한 중독, 의존 및 금단 증상을 질환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미국 일본 영국에서는 니코틴 의존증을 재발하기 쉬우나 반복 치료를 통해 완치될 수 있는 만성질환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정부가 중심이 되어 금연치료 가이드라인을 책정하고 보험급여를 적용하는 등 사회적 환경을 정비하고 있다. 흡연자의 금연을 도울 여건을 적극 만들어가는 것이다.
흡연율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선 공중보건을 위한 방법과 개인 흡연치료를 위한 방법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정부가 추진한 금연구역 확대나 담배가격 인상 등 공중보건적 금연정책은 흡연율을 감소시켰다. 그러나 흡연 감소율은 제자리를 맴돌다가 지난해부터 약간씩 상승하고 있다. 공중보건적 정책만으로는 한계점에 이르렀다. 이제는 흡연자의 개인치료를 위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공공금연정책은 선진국 못지않지만 개인의 금연치료에서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다. 공공을 위한 금연정책 외에 금연을 돕는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낮다. 선진국에서 흡연을 질환으로 인식하고 건강보험 급여를 지원하는 모습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흡연은 고혈압과 같은 다른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보험급여를 적용하여 적극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다. 국내에서는 금연 관련 치료에 보험을 적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에는 매우 부담스럽다. 금연을 빨리 하면 할수록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더 큰 질환으로 인한 삶의 질 문제와 경제적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체계화된 금연 상담과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개인에게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합리적 제도 마련을 서두를 때다. 개인의 노력 못지않게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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