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李대통령, 통일안보 새 설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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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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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북한전문가는 김정일의 이른바 대화전략과 압박전략을 분석하면서 “아이템 선정은 저들이 우리보다 한수 위임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아니, 남한이 북한보다 예산도 인력도 훨씬 많은데 도대체 왜 밀리고 끌려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야 공작조직, 선전활동 같은 대북 우위요소를 스스로 포기한 탓이 컸지만 압도적으로 정권을 교체한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뭐했나 싶다.

이 대통령이 방미 중이던 2008년 4월 18일 정부는 한미 쇠고기협상을 타결했다고 발표했다. 촛불시위를 부추긴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프로그램이 방영된 것은 열하루 뒤인 4월 29일이었다. 그런데 북의 대남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 소속 반제민족민주전선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라는 대남문건을 발표하며 시위를 선동하기 시작한 것은 4월 26일이었다.

그때 청와대 농림부 외교부 통일부 국가정보원의 어느 누구도 광우병 주장의 허구성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조목조목 따지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5월 2일부터 촛불시위가 격렬해졌고, 이 대통령은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청와대 뒷산에 올라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고,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정부는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요즘 광우병에 관한 공세적 백서를 만든다지만 시쳇말로 뒷북이다.

국민 안심 못시키는 對北대응

6·25전쟁 60년 만에 가장 충격적으로 북한테 당한 천안함 폭침 이후의 남북 공방을 보면서도 우리 정부와 군이 충분히 미덥지 않다. ‘단호(斷乎)히’라는 말은 값이 폭락해버렸다. 앞으로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이 이 말을 쓰더라도 많은 국민은 ‘또 단호? 두고 보지 뭐’ 하며 귓등으로 흘려버리지 않을까.

개성공단 상황, 반대세력의 전쟁공포 선동, 김정일 집단의 전방위 협박, 중국의 발목잡기 등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5월 24일 대북 심리전 재개를 공언할 때 그런 부담을 몰랐단 말인가. 결연하게 발표해놓고 일주일도 안 돼 꽁무니를 뺀 것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당장 심리전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국민이 정부의 안보정책을 안 믿게 되고, 북은 남을 더 깔보며 다시 도발충동을 느낄 가능성이 커진다. 심리전부터 흔들리는데 다른 정책인들 제대로 실현될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 전체의 통찰력, 전략적 판단력, 담력뿐 아니라 종합적 위기관리능력을 믿기 어려워진다.

북은 오히려 진화된 심리전으로 파고들었다. 금강산 평양 개성공단 방문자들이 무심코 건넨 명함을 정보화하고 해킹으로 알아낸 주민등록번호를 악용해 무차별적인 사이버공세를 펴고 있다. 삐라도 안 뿌리고, 확성기나 전광판도 안 세우면서 IT강국 남한을 역이용하는 심리전이다.

우리 정부는 두 개의 전선과 싸우는 형국이다. 하나는 김정일 집단의 군사적 도발이라는 제1전선이고, 또 하나는 남쪽에 있는 친북집단이 구축해놓은 제2전선이다. 북의 호전집단과 남의 이른바 평화세력은 전략적 목표뿐 아니라 전술 면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국정원 검찰 경찰은 이들의 실체를 충분히 파악해 대응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방어적 정보전을 넘어 북한 내부의 민주화운동을 촉진하는 전략과 활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에서 “보통 안보라고 하면 대결과 대치상태만 생각하는데 근본적으로 우리는 통일을 염두에 둔 안보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북한 내부의 변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먹물 빨아들이는 솜 같은 청소년들이 ‘6·25는 북침이다’ ‘김일성은 항일투사였는데 이승만은 독재자다’라는 반한친북 세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천안함을 북이 아니라 미군이 오폭했다고 꿰맞추는 주장은 청소년뿐 아니라 멀쩡한 성인들까지 반신반의하게 만들었다. 대북 심리전 못지않게 국내의 날조정보 유언비어 미신을 햇볕에 말릴 수 있는 정부의 발신(發信)능력과 소통능력이 절실하다. 이것은 안보의 중요한 내부인프라다.

제도 및 人的재구축 나서야

군사태세의 환골탈태는 말할 것도 없다. 1997년 외환위기라는 경제대란이 금융 재벌 등의 개혁을 촉진했듯이 천안함 폭침이라는 안보대란은 군(軍)개혁의 확실한 시발점이 돼야 한다. 작전계획(작계) 시리즈가 있지만 실제 연습이 아니라 군인들 속어로 ‘했다치고 작전’이나 해서는 북에 또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6·2지방선거가 끝난 지금 이 대통령의 최고과제는 청와대, 국방부와 군, 국정원과 국군정보사, 외교부, 통일부 등의 통일안보외교 신경계를 제도 및 인적으로 재구축하는 일이다. 약체(弱體)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말대로 ‘통일을 염두에 둔’ 그랜드디자인이 필요하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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