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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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6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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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이 달려오고 있다.

1년 반 뒤면 시작되는 그해, 북한은 강성대국 완성을 선포하며 고려연방으로 국호를 바꾸기라도 할 것인가? 김정일은 건재할 것이며, 김정은 세습도 성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것인가? 중국은 그해 시진핑, 리커창 등이 제5세대 지도부를 출범시킨 뒤 남북한을 어떻게 다루려 할 것인가? 러시아는 그해 대선에서 푸틴이 다시 대통령으로 등극해 북한과의 관계를 훨씬 강화할 것인가? 미국 국민은 그해 오바마를 재선 대통령으로 만들어줄 것인가? 그 뒤의 한미동맹은 우리나라의 안전판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인가?

더 큰 관심사는 대한민국의 그해 4월 총선과 12월 대선 풍향이다. 지난 6월 2일 밤 지방선거 개표를 지켜보면서 ‘2012년이 요동치겠구나’ 생각한 국민이 많았을 것이다. 6·2선거는 과거 이회창 대세론처럼 ‘한나라당 재집권론’이 미신(迷信)임을 일찌감치 깨우쳐줬다.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은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뒤 20년 이상 기다려야 했지만, 2012년엔 단번에 당선되는 ‘한국판 오바마’가 나올지 모른다는 상상마저 불러일으켰다.

그해 남북관계는 더 극적으로 소용돌이칠 가능성이 있다. 한국 북한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의 국가지도자 조합(組合)이 얽히고설키고 맞물리면서 한반도의 장래와 5000만 국민, 7400만 민족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천시(天時)는 기다리기만 하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누가 어떤 일을 도모하며 상황을 엮어내느냐에 따라 정권 향배도, 국가 운세도 뒤바뀔 수 있다.

대한민국 갈림길의 해

김영삼 노무현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2012년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험받을 차례다. 정권 재창출 여부는 대통령 성패의 중요한 잣대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대통령은 스스로 성공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2007년 이명박 후보에게 대승을 안긴 대선은 ‘노무현 심판’의 선거였다. 그로부터 2년 반 뒤 ‘노무현 폐족’ 김두관 안희정 이광재가 지역의 벽을 깨고 부활했다. 어떤 고정관념도 통하지 않는 시대다.

6·2선거 이후 이 대통령에게 던져진 첫 숙제는 인사(人事)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양날의 칼이다. 잘한 인사는 그 자체가 국정 성공의 일부가 되지만 잘못한 인사는 대통령의 무능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동시에 정부의 무능을 자초한다. 대통령은 국가 인재풀 전체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발탁할 수 있기 때문에 인사에 실패하면 변명도 할 수 없다. 정권 후반부로 갈수록 ‘한자리 챙기려는’ 주변 사람들이 더 극성을 부리겠지만 보은-연고 인사가 거듭되면 2012년 총선과 대선이 ‘이명박 심판’ 성격을 띨 우려가 더 커진다. 그렇지 않고 이번에 정부 인사와 한나라당 재편이 세대교체 가능성을 포함해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면 지방선거 패배의 충격을 상당히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 일각은 패배주의에 빠져 정체성(正體性)위기 조짐마저 드러내고 있다. 역시 ‘심약한 웰빙 보수(保守)’답다. 이런 모습으로 우왕좌왕하면 총선에서 1등은 어림없고 대선에서도 반(反)한나라당 총연대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집권 후 2년여 동안 당내 통합은커녕 원수처럼 싸우는 흉한 몰골을 여지없이 보여 왔다. 그러고도 선거 승리를 바랐다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또한 지역에서나 대학가에서나 노동현장에서나 젊은층과 만나고 함께 고민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설득의 정치’를 야권(野圈)의 반도 하지 않았다. 20, 30대가 투표장에 몰릴까 봐 눈치나 보는 행태로는 ‘그렇지 않아도 불리한 세대(世代) 지형’ 속에서 2012년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보수는 진보보다 레토릭(수사·修辭)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는 머리 쓰지 않는 게으름뱅이의 변명이다. 2007년 대선 때는 ‘경제대통령’의 포지티브와 ‘잃어버린 10년’의 네거티브를 엮어 BBK 광풍까지 날려버렸다. 그러나 6·2선거에선 ‘천안함 비극’에나 올라타려다 역풍을 맞았다. ‘지킬 가치를 지키는 보수’의 소신도, 행동력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근본문제다.

‘심약한 보수’로는 나라 못지킨다

이런 노곤한 자세로 김정일 집단의 배수진을 친 공세를 어떻게 차단하며, 야권의 기획력과 전투력과 단일화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민심이 전광석화처럼 변하는 시대, 2012년까지는 긴 시간이다. 민생을 구체적으로 개선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와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 등 경제와 안보의 기반을 다지며,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에 대한 비전을 국민과 세계 앞에 당당하게 보여준다면 아무리 럭비공 같은 젊은 세대라도 무조건 반대만 하겠는가. 20대는 앞으로 80년을 더 살 세대다. 지금 나라가 잘못가면 이들이 가장 긴 세월 고통 받을 것임을 왜 이해시키지 못하는가.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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