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우경임]‘불법낙태 근절’ 이상과 현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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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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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라이프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이 의심되는 산부인과 3곳을 검찰에 고발하며 시작된 이른바 ‘불법 낙태 논쟁’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심상덕 프로라이프의사회 윤리위원장은 “궁극적으로 어떤 낙태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혼모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현실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라는 반박도 나온다.

취재 도중 만난 B산부인과 의사는 ‘에드워드 증후군’이 의심되는 태아를 임신한 산모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에드워드 증후군은 한 쌍으로 돼 있는 18번 염색체가 3개로 늘어나 발생하는 선천성 기형이다. 출생 후 10주 안에 대부분 사망한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태아 기형의 원인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면 낙태가 허용되지 않는다. B산부인과 의사는 “산모에게 불법 낙태이니 출산을 하시되 아이가 태어나서 살 확률은 매우 낮다고 말하는 게 옳은 것인가”라고 말했다. 의사는 “차라리 사실을 얘기해 주고, 다음에 건강한 아이를 낳도록 도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의사는 이어 “낙태는 허용돼야 하나요, 금지돼야 하나요”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불법 낙태 시술이 중단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기형아를 임신한 부부만 고통을 받는 게 아니다. 10대 청소년이 낙태 시술 병원을 찾아 전전하고 있고, 성폭행 피해자도 병원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고 있다. 불법 낙태 논쟁이 ‘찬성이냐 반대냐’로 흐르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왜 전체 낙태의 95%가 불법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불법 낙태 시술을 중단한다면 미혼모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들을 이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프로라이프의사회는 보건복지가족부에 불법 낙태 단속을 철저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미혼모 지원 대책과 출산이 편안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단서’를 덧붙였다. 다만 어떤 식으로 미혼모를 지원할 것인가는 제안하지 않았다.

복지부는 다음 달 불법 낙태를 예방하기 위해 사회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불법 낙태를 하러 산부인과를 찾는 10대 소녀가 생기는 것도 문제지만 그들에게 무조건 아이를 키우라고 강요하는 것도 문제다.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도 고민해야 한다. 현명한 해법이 협의체에서 나오길 바란다.

우경임 교육복지부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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