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권 국가와 미국의 시차를 이용한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부정행위 사례가 수사당국에 처음으로 적발됐다. 관리가 소홀한 태국에까지 건너가 시험지를 빼돌린 열성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에선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이미 SAT 문제 유출과 부정행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는데 사교육을 바로잡겠다던 정부와 교육당국만이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번에 SAT 시험문제를 유출해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강사 김모 씨(38)가 있던 학원은 국내 SAT 대비 학원 중 1, 2위를 다투는 곳이었다. 문제의 강사 역시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1타 강사’였다고 한다. 이들이 수강료로 받아 챙긴 돈은 1인당 한 회에 30만 원으로 기준 수강료보다 15배 많은 금액이다. SAT 학원들은 방학 때 귀국한 유학생들을 상대로 반짝 고액과외를 하고 있고, 수강료는 부르는 게 값이다.
문제는 과도한 수강료에서 끝나지 않았다. 학원이 이렇게 많은 수강료를 챙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SAT 대비 학원가에서는 온갖 편법, 불법을 통한 고득점 비결이 나돌고 있다. 거액의 수강료를 챙긴 강사들은 앞 다퉈 SAT 시험문제를 유출해 왔다. 입건된 김 씨는 2007년 이전까지는 자신이 직접 SAT 시험에 응시해 기출 문제를 빼냈고 강의교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내까지 SAT 시험을 치르게 했다. 자신이 시험을 보고 알아낸 기출문제를 강의에 활용하면서 문제가 불거지자 미국교육평가원(ETS)은 2007년부터 김 씨의 응시 자격을 박탈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으로 정직하게 공부해온 학생들만 피해를 떠안게 됐다. 입학사정관제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미국 대학에서 정정당당하게 공부해 실력을 쌓은 한국 유학생들이 일종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부정행위 의혹을 받고 있는 학생들은 부유한 집안 출신들이다. 어린 학생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점수만 받으면 된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는 것이 더 안타깝다. 혹시 재수 없어 걸렸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 사교육을 탓할 것은 없지만 정상적인 공부가 아니라 편법과 부정행위를 가르치는 학원이라면 문을 닫게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미국에서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만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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