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희상]아프간 파병 좀 더 과감해도 좋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3일 03시 00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는 세계 43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유엔 안보리도 아프간 전쟁에 대한 회원국의 기여를 만장일치로 촉구(제1890호)했듯이 ‘테러와의 전쟁’은 이 지구촌 시대, 포괄안보 시대를 함께 사는 모든 나라 공통의 전쟁이다. 만약 여기서 미국이 끝내 실패하고 만다면 테러의 공포는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다. 파키스탄이 제2의 아프간이 되어 온 인류가 알카에다의 핵 테러에 떨게 될 것이라는 전문가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한 나라의 군사력이 국경선을 넘나들며 인권이나 평화와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보호하고, 그것으로 국제사회의 존중을 받고 국가 이익도 확보하는 시대다. 그것이 세계화 시대를 성공적으로 사는 길이다.

100여 명의 아프간 지방 재건팀과 320여 명의 국군 파병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지만 한국군의 파병에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당장 이 전쟁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추락하면 우리 국가안보태세 자체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또 동맹이란 원래 상호지원 관계다. 유사시 미군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 역시 같은 도움을 주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노벨상 수상식에서 “미국 국민의 피로 독일에서 한국까지 평화와 번영을 증진시켰다”고 강조했는데 바로 지금도 미군 수만 명이 한국의 안보에 기여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중국과 일본의 새삼스러운 민족주의 바람과 급격한 미중, 미일 관계의 변화 그리고 이른바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 등 머지않아 한반도에 휘몰아칠지 모를 거대한 안보태풍을 고려하면 미국과의 뜨거운 혈맹적 우의와 튼튼한 동맹이 과거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그것도 남과 북의 운명을 가름할 이 특별한 상황에서 한국이 살아남고 새로운 역사를 열어 나가려면 단순한 문서상의 동맹이 아니라 그 이상의, 지금처럼 연합사로 연결된 ‘구조적인 동맹 체제’가 긴요하다.

전략동맹 고려한 파병이 돼야

하필 이럴 때 우리는 거꾸로 연합사를 해체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정권이 바뀐 후 미국과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체제’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약속을 하고 이를 위해 내년에는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도 갖기로 했다. 이제 어떻게 하든 새로운 ‘한미 전략동맹’ 체제를 한국의 필요와 기대에 맞게 구축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미동맹이 입은 상처를 고려하면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한미동맹의 효용성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감동적 공감을 이끌어 내지 않으면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삼국시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 당의 고구려 침략에 동참했던 신라 이상으로 고도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는 파병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정도 파병이면 ‘전략동맹국’으로서의 의무는 다하는 것인지, 특히 그것으로 미국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인지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3만 명 증파’와 함께 2011년 7월부터의 철수도 약속했다. 조속한 승리에 대한 결의의 과시이자, 여기에 정치적 배수진을 친 형세다. 당연히 맹방(盟邦) 한국군에 대한 기대도 클 수밖에 없다. 어느 미국 전문가는 “올해 2월 미 의회 군사위원 및 힐러리 클린턴 장관의 방한은 물론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의 ‘확장억제 명문화’나 특히 양차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자유민주통일을 거론하고 ‘모범적 전략동맹’을 다짐했던 것들이 모두 그 때문”이라면서 ‘영국 수준’은 기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긴 모두가 애써 외면했을 뿐이지 이심전심(以心傳心) 짐작하지 못했던 바도 아니다. 자칫 동맹국의 자존심을 헤집고 전략동맹의 미래에 대한 실망만 안겨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반미면 어떠냐’던 정부보다도 턱없이 부족한 지원으로 어떤 형태의 ‘전략동맹’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미래 위해 지혜로운 결단을

그럼에도 미국은 우리의 파병 결정을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그러나 어쩐지 지난 이라크 파병 시 우리 언론에는 ‘감사’를 말하면서 리언 러포트 사령관에게 ‘한국에서 3000명이 뭐냐’고 손가락을 펴 흔들며 섭섭해했다는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과 오바마 대통령이 시사한 ‘주한미군의 전환 배치 가능성’도 예사롭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친서를 둘러싼 전례 없는 논란과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한과 ‘평화협정’을 거론했다는 것은 더욱 마음에 걸린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은 비슷한 상황에서 국군의 베트남 파병으로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회로 반전시켰다. 지금은 더더욱 지혜로운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아프간 파병은 훨씬 더 과감해도 좋을 것이다.

김희상 객원논설위원·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khsang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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