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원주]지구를 구하자고? … 일회용품에 묻힌 코펜하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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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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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와 온실가스 발생을 줄여 지구를 구하자는 취지의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COP15)가 열리고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 벨라센터에서 뜻밖의 장면을 만났다. 곳곳에서 일회용품이 남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신경 쓰면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곳들에도 일회용품이 넘쳤다. 복잡한 출입 절차를 거쳐 회의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한쪽에 수북이 쌓인 수십 종류의 인쇄물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이 공식 발표하는 수십 쪽짜리 ‘오늘의 일정’부터 비정부기구(NGO)들이 발행하는 1, 2쪽짜리 홍보물까지 다양하다. 매일 나오는 이 인쇄물 대부분은 재생지가 아닌 고급 프린트용지였다.

식당이나 매장에서 파는 음료도 모두 종이컵에 담겨 나왔다. 회의장 곳곳에는 쓰고 버린 빈 종이컵이 쌓인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수기 옆에 놓인 컵들도 플라스틱 소재의 일회용이다. 이번에 대표단으로 참석한 한 환경부 공무원은 “지난해 10월 경남 창원에서 열렸던 제10차 람사르 총회 때는 주최 측에서 개인 컵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며 “이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번 행사 주최 측은 행사용 컵으로 ‘녹말 컵’을 쓰겠다고 했지만 식당에서 나오는 포크, 나이프 외에 녹말로 된 것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수건이나 건조기 대신 휴지로 만든 핸드타월이 있었다. 휴지통엔 젖은 부분이 얼마 안 되는 핸드타월이 수북했다. 이번 회의가 열리는 2주 동안 회의장에서 나오는 온실 가스는 4만여 t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이는 2006년 기준으로 스위스에서 배출하는 총량보다 많은 양이라고 한다.

주최 측은 회의를 친환경적으로 치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인쇄물의 경우 회의장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원 확인 절차를 밟을 때 e메일 주소를 등록해 온라인으로 보낸다면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또 “개인 컵을 사용해 달라”고 안내만 했어도 종이컵 사용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참가자들의 무신경함도 거슬렸다. 말로는 ‘지구를 구하자’고 외치면서 ‘잠깐의 편의’ 때문에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채 일회용품을 쓰는 것 같았다.

이번 회의에서는 환경을 구하기 위한 온갖 담론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큰 담론도 작은 행동이 앞서지 않으면 성공시킬 수 없지 않을까. 코펜하겐에서

이원주 사회부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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