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명숙 전 총리 비리 의혹 수사를 정치화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6일 03시 00분


인사 청탁과 함께 5만 달러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라는 검찰의 요구를 두 차례나 거부했다. 한 전 총리가 “거리낄 것이 없다”면서도 친(親)노무현 세력과 함께 검찰 수사에 대응하는 방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 전 총리를 비롯한 친노 세력과 야권은 이번 수사를 처음부터 ‘정치 공작’으로 규정하고 이른바 ‘정치공작 분쇄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공대위 위원장인 이해찬 전 총리는 “한 전 총리 개인의 사안이 아니고 민주진영 전체의 명예가 걸린 것”이라며 “더러운 공작정치를 분쇄하는 싸움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제는 서울 명동에서 검찰 규탄대회까지 열었다. 비리 혐의에 대한 수사를 정치탄압으로 호도하며 성전(聖戰)이라도 치르는 듯한 행태는 비리 정치인들이 자주 쓰던 낡은 술수이다.

한 전 총리는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와 공작정치에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와 공대위는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수사 검사를 고발하고 일부 언론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노무현 정권을 상징하는 전직 총리들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니 답답하다.

한 전 총리는 “단돈 1원도 받은 일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떳떳하다면 검찰에 나가 결백을 입증한 뒤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피의 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을 고발해놓고 “검찰이 육하원칙에 따라 증거를 공개하면 우리도 공개적으로 반박하겠다”는 공대위의 주장도 억지다. 그건 기소될 경우 법정에서 할 일이다.

검찰이 정치적 목적으로 전직 총리에게 날조한 비리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공대위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가 지금 독재시대에 살고 있는가. 공대위는 이 사건을 ‘정치공작’ ‘검찰과 수구언론의 합작’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수사와 언론 보도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창당을 준비하는 친노 세력은 노 전 대통령에 이어 한 전 총리의 비리까지 드러나면 타격이 클 것을 우려해 이번 사건을 정치 공작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검찰은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서라도 한 전 총리를 조사해야 한다. 친노 세력과 야권의 정치 공세에 위축될 이유가 없다. 한 전 총리가 비리를 저질렀는지의 여부는 정상적인 법 절차에 따라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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