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TV로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행정중심도시로 예정된 세종시의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세계가 경제 전쟁인데 총리와 9개 부처가 지방에 내려가면 대통령 혼자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내가 좀 편안하려고 국가가 불편한 것을 할 수는 없다. 먼 훗날이 아니라 다음 임기에서 저는 역사에 떳떳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 때 충청 표를 의식해서 원안대로 할 듯이 말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면서 “원안을 바꾸는 게 도움이 되더라도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 대통령의 직접 언급으로 세종시 수정은 긴급한 국정과제로서 추진력이 붙게 됐다. 대형 국책사업의 방향을 트는 것이니 만큼 논란이 없을 수 없겠지만, 정파적 정략적 소모적 논쟁을 피하고 충청권을 포함한 국가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야 한다.
세종시 구상은 애당초 그 자체의 필요성보다는 정치적 이해타산의 산물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주장했던 것처럼 수도권 과밀 완화와 지역균형 발전이란 측면에서 보더라도 세종시 구상은 번지수가 크게 틀렸다. 행정이 중심이 되는 도시로 그런 목적을 이룬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전례가 없고 실패한 전례만 있다. 원안대로라면 밤에는 불 꺼진 유령도시가 되기 쉽다. 목표 인구 50만 명은커녕 10만 명도 채우기 어렵고, 자족도시로서의 기능은 기대할 수 없다.
원안은 사실상의 수도 분할에 따른 행정 비효율, 국가적 위기상황 발생 시 대처 능력의 저하, 국가 경쟁력 약화, 통일 후의 상황 변화를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은 내용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더 좋은 방안이 있다면 구태여 세종시를 행정중심도시로 고집할 이유가 없다. 지금부터는 어떻게 하면 자족기능이 충분하고, 충청지역 발전을 촉진하며, 국토균형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세종시를 만드느냐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필요하다면 토지 활용 방안에서부터 규제 완화, 세제 지원에 이르기까지 밑그림을 원점에서 다시 그려야 한다.
다른 지역 피해의식, 몇 마디 말로 해소 어려워
새로운 성격의 세종시를 만들더라도 다른 지역과의 균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에는 새로운 게 오는 것이지 다른 데 갈 것이 올 계획은 전혀 없고, 정부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상당수 지역에서 역차별에 대한 위기감과 피해의식을 토로하고 있다. 비(非)충청권 지역에서는 “세종시는 블랙홀이다. 다른 지방의 산업시설을 다 가져간다. 새로운 투자가 속속 물 건너가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들려온다.
대통령이 전임 정부에서 결정했고 여야 합의로 국회 동의를 거쳤으며 스스로 약속한 사안을 뒤집는다는 것은 신뢰와 관련된 문제다. 그러나 잘못을 알고도 비난을 의식해 눈 감고 방치한다면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무책임하다. 세종시 문제는 선거 때 앞뒤 가리지 않고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훗날 그 뒤치다꺼리에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준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를 생산과 투자가 있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도시로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국민과 충청권, 정치권에서도 대안을 보고 진지하게 생각해 줄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세종시 수정은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대통령과 정부는 ‘대안이 국익’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다각적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세종시 수정에 정부의 명운이 걸려 있다는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